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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아터진 경찰 수술시급/제정갑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경찰관 총기난사 사건이후 만나는 경찰간부들은 강경대군 치사사건때와는 달리 별다른 변명없이 『면목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강군사건만 하더라도 시위진압이란 업무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지만 이번 사건은 사감에 따른 「살인혐의」로 경찰자질문제에 대한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국 치안본부장도 27일 오전 당초 예정시간보다 앞당겨 기자회견을 자청,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라며 망연자실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시위시국의 긴 터널을 겨우 뚫고 나온 경찰전체가 결정타를 얻어 맞고 무기력 상태에 빠진 느낌이다.
경찰은 그동안 각종 비리·부정사건이 터질때마다 새로운 경찰상 확립을 다짐해 왔지만 모두가 헛구호에 그친 셈이 됐다.
최근 며칠사이만도 경무관들의 빠찡꼬 불법허가관련 비리가 드러나고 순경이 대낮에 시민의 손지갑을 날치기하다 행인에게 붙잡히는 등 비리·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27일에도 경기도 이천에서 의경이 회사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사건이 발생,허탈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이같은 경찰의 탈선행위는 곪은 환부가 터지듯 잇따르고 있어 경찰청 발족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국회에서 경찰청법안이 통과되면서 내심 기구개편·권한확대의 꿈에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은 외형상의 기구격상에만 눈독을 들였을 뿐 교육·자질개선등 이에 걸맞는 내실을 갖추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아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쏟았던게 사실이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시킬 교육은 날림으로 치러지기 일쑤고 민생치안 인력난을 이유로 제대로 인성검사도 거치지 않은채 마구잡이식 채용은 여전했다.
경찰의 학력을 보면 전문대졸 이상이 일반공무원(34%)의 절반수준인 18%며 그나마 최근 학력저하가 심화되는데도 대책 마련의 움직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문에 최근 경찰의 탈선행위들은 경찰청 발족으로 권한은 확대되나 오히려 자질이 떨어지고 있는데 대한 자연스러운 경종이라는 느낌이다.
우리 경찰은 46년 장관급 부처인 경무부로 출발했으나 경찰관의 횡포에 대한 반감이 고조돼 48년 국회에서 경찰기구 축소를 의결,내무부 치안국으로 격하된 아픈 경험이 있다.
지금이라도 살을 도려내는 자성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언제 또다시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져 경찰이 재기불능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위간부들은 명심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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