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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그라운드 제로' … 시작된 탈당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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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언한 최재천 의원이 24일 오전 국회 휴게실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 의원 옆은 ‘당사수파’인 김태년 의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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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의원이) 저기 가면 탈당하려는 줄 알아…."

24일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최근 임종인.이계안.최재천 의원 등의 연쇄 탈당 선언과, 천정배.염동연 의원 등 예고된 이탈 움직임으로 어수선한 당 분위기를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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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긴 조심스럽지만 (한나라당에 가려는)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계안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 일부 여당 의원이 한나라당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잠시 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국회에서 "여당 일부 의원이 입당을 타진한 게 사실"이라고 공개했다. 전날 한나라당 김무성 전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의 건전 보수 정객을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들이 집권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영입 작전'을 펼치는 웃지못할 풍경이다.

열린우리당은 요즘 '그라운드 제로(재앙 현장)' 상태다. 지진.테러 사태 뒤 피해지역을 서둘러 떠나려는 인파가 생기는 것처럼 개인별.그룹별 탈당설이 끊이지 않는다. 권력이동을 체감한 일부 의원은 '적진(敵陣)'인 한나라당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에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선거 참패, 10.25 재.보선의 몰락으로 확인된 민심 이반은 당 자체를 흔들었다. 당시 김근태 의장은 "열린우리당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평화번영세력을 결집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 통합신당파가 주도하는 정계개편은 노무현 대통령이란 '벽'에 부닥쳤다. 노 대통령은 신당파를 때리는 발언을 잇따라 쏟아놓았다. "나는 신당에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겠다는 것"(11월 말), "(통합신당은) 결국 구(舊)민주당으로의 회귀"(12월 초)라고 주장했다. 친노 그룹이 당 사수파의 핵심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통합신당파는 탈당 쪽으로 기울었다. 그들 사이의 내부 균열도 작용했다. 고건 전 총리와 손잡을지, 민주당과 우선 통합할지 등을 두고서였다. 김근태 의장과 강봉균 정책위의장 간의 이념논쟁은 진보 개혁-보수 실용 노선 간의 해묵은 갈등을 증폭시켰다.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겨냥해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였다"고 말한 건 이 무렵이다. 노 대통령의 개헌안 제안,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등으로 통합신당의 큰 그림은 헝클어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신당파 의원들은 절박하다. 열린우리당의 '창업자'인 정동영 전 의장과 천정배 전 원내대표가 "(통합신당이 좌초한다면) 나를 포함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사태는 비관적"이라고 받아치며 '탈당 도미노'는 시작됐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지금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나 마찬가지다. 현역 의원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를 정도로 혼미하다. 그런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서너 개로 갈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유력하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소수가 열린우리당에 잔류하고, 나가는 사람 중에서 개혁적 색채가 강한 분과 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보 성향의 김근태 의장과 운동권 출신의 의원들, 문희상.유인태 의원 등 중도 그룹의 향배도 탈당 규모나 신당 성격을 좌우할 변수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2.14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렸다. 지도부를 합의 추대할 수 있다면 의외로 대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분열된 여권이 대선 국면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대통합을 이끌어낼 만한 인물, 즉 강력한 대선후보의 등장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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