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 안의 수퍼컴' 한국인이 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컴퓨터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기술이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핵심 부품인 기억용 칩에 정보를 쌓는 기술을 현재보다 100배 이상 늘려 캐비닛 크기의 수퍼컴퓨터를 손바닥만 하게 줄일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25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칼텍) 박사 과정의 최장욱(32.사진)씨가 주도한 연구팀이 지금의 D램에 들어가는 칩과 크기는 같지만 100배 이상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초고집적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최씨는 논문을 작성한 두 명의 공동 주 저자 중 한 명이다.

논문에 따르면 칼텍 팀은 현재의 D램 칩과 동일한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정보 저장 공간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내부 회로용 전선을 극도로 가늘게 했다. 또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로 실리콘 대신 유기물질을 써 전기 소모가 크고 열이 많이 나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원리는 이렇다. 칩 안의 정보를 저장하는 방을 연결하는 전선 폭(線幅)을 15나노m로 줄인 뒤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의 간격(33나노m)을 두고 전선을 배열했다. 현미경으로 보면 빗살무늬 같다. 거기에 유기화합 물질인 '로택사인'을 붙여 나갔다.

<그림 참조>

칼텍 팀은 이런 방식으로 좁쌀 크기의 면적에 16만 비트를 집적할 수 있었다. 이는 D램 칩 1㎠ 면적에 1000억 비트(100기가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상용화한 초고집적 D램의 선폭은 50나노m였다. 삼성전자 측은 "15나노 기술이라면 현재 기술 수준보다 2세대 이상 앞섰다고 볼 수 있지만 상용화 가능성은 논문 내용을 좀더 들여다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칼텍 팀이 개발한 초고집적 반도체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지평을 연 의미가 있다.

물론 상용화까지 해결 과제가 많다. 최씨는"지금 개발한 칩을 1000번까지 작동해 본 결과 정상적으로 정보를 읽고 쓰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기존 D램처럼 수만 번 이상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유기물의 성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실용화까지 적어도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최장욱씨=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제1회 '삼성 이건희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유학을 간 지 5년 만에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최씨는 서울대 응용화학부를 학점 4.3 만점에 4.02로 졸업한 우등생이다. 대학 3학년 때는 미 풀브라이트 재단과 GE가 뽑는 장학생에 선발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최경원씨의 장남이다.

그는 올 여름 박사학위를 받으면 박사 후 연구과정을 미국에서 밟으면서 암 조기 진단용 바이오 센서 개발 분야를 연구할 계획이다. 최씨는 "이번 D램 개발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회로를 가늘게 만들고 배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나노(nano)=나노는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나노m는 10억분의 1(10-9승)m를 말한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 정도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