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동영 "소수 고립주의자 털고 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2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선고공판에 참석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늘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해왔다. 이른바 '시중론(時中論)'이다. 주변에선 요즘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21일 "(통합신당이 좌초된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친노무현'성향의 당 사수파를 겨냥해선 "소수의 개혁 모험주의자"라고 비판했다.

22일에도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읽고 응답하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탈당설에 힘을 싣는 발언이었다.

그러자 여권은 요동쳤다. 탈당을 놓고 좌고우면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원칙 있는 국민 신당'을 하기로 한 김근태 의장이 "자제하라"고 요청했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22일 임종인 의원이 당을 떠난 데 이어 23일 통합신당파인 이계안 의원도 사실상 탈당을 선언했다.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끄는 정 전 의장마저 탈당 대열에 가세하면 열린우리당의 빅뱅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움직이면 20~30명의 의원이 동반 탈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 사수파도 이날 "당헌 개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이광재 의원)고 한발 물러섰다.

23일 여성유권자연맹 행사에서 만난 정 전 의장은 "지금 탈당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 수위는 여전히 높았다. "소수 고립주의자 등 도저히 융화할 수 없는 부분은 털어내야 한다"거나 "좌우 양 극단을 벗어나 가운데로 통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 사수파가 입장을 바꾸는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소수의 고립주의자가 그간 당에 입힌 상처를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이다.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받드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이념 논란은 교조적이고 원리주의적이다."

-당이 결국 여러 개로 쪼개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생각은 여러 갈래일 수 있지만 목적은 대통합을 이루는 신당이어야 한다. 어렵겠지만 가닥을 잡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백의종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지금' 움직이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고건 효과'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많다. 그와 동향(전북)인 고 전 총리는 그나마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유지해 왔던 여권의 유일한 대선 주자였다. 두 사람은 호남 표를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고 전 총리의 낙마 뒤 정 전 의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이를 방증한다.

당 관계자는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여권은 지금 정치적인 빅뱅 상황"이라며 "정 전 의장이 텃밭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3%의 벽에 막혔던 그의 지지율은 최근 7%까지 올라섰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의 한 측근은 "다음달까지 10%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그러나 회의론도 적지 않다. 한 의원은 "아무리 오른다 해도 한나라당 두 후보 다음인 3등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공공연하게 "국민은 참신한 인물을 원한다"고 역설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제3후보의 진입을 위해 정 전 의장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다.

정 전 의장은 이에 대해 "대선 후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호를) 열어두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최대한 함께하라는 게 국민의 뜻이란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