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논술] 자기 주장은 분명하게…논리 전개는 독창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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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치러진 2005학년도 대학입시 논술시험에서 수험생들이 신중하게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올해 정시 논술에선 답안이 독창적이어야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와 연세대가 비교적 친숙한 제시문과 평이한 논제를 줘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하려 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와 이화여대도 문제 요구 내용이 선명하고 단순하다고 밝혀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드러내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학년도 정시 논술을 치른 주요 대학 관계자에게 논술 고득점 방법과 채점 기준을 들어봤다.

서울대…의심하고 비판하는 능력 키워야

김영정 입학관리본부장은 올해 정시 논술에 대해 "암기된 지식과 준비된 답안으로는 쓸 수 없는 문제였다"며 "교과서 내용을 무조건 암기할 게 아니라 의심하고 비판해 보라는 게 출제 의도였다"고 밝혔다.

이번 정시 논술은 사회 교과서와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제시문으로 발췌하고, 세 가지 관련 예화를 덧붙인 뒤 지식정보 사회에서 기업.가정.정부가 어떤 속도로 변화해야 하는지 물었다. 김 본부장은 "우리 사회의 변화 양상을 비판적으로 점검한 뒤 변화 속도의 관점에서 기업.가족.정부의 유기적 연관성을 깊이 있게 파헤쳐 보라는 문제였다"며 "여러 조건을 답안에 정확히 반영하되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이한 주장만 내세우는 건 위험하다. 김경범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는 "논제에서 벗어나면 유려한 글도 기준 미달이 된다"며 "논제에 맞도록 주장과 논거를 참신하게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학생의 사고력·표현력에 중점

김왕배 출제위원장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현상을 사회현상에 적용해 해석할 줄 아는가를 물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사고 과정에 철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반영됐는지를 평가한다는 얘기다. 올해 정시 문제는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물으면서 장자, 토마스 네이글, 김유정, 폴 처칠랜드의 글을 각각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국어 교과서와 철학 개론서에서 제시문을 골고루 뽑았다"며 "창의력을 평가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친숙한 제시문과 평이한 주제를 택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2008학년도 논술에 대해 "3월 이후에 모의고사를 치른 뒤 문제의 형식과 난이도를 최종 결정할 것이다. 문제 유형은 지난해까지 출제된 것과 비슷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논술을 준비하려면 문제 유형에 관심을 갖기보다 사고력과 표현력을 키우는 게 좋다"며 "신문기사를 읽더라도 자신의 문제와 연관시켜 보라"고 조언했다.

고려대…탄탄한 사고, 표현력 뒷받침돼야

이번 정시 논술 문제는 '공통 주제를 찾고, 제시문의 연관 관계를 밝힌 다음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는 기존의 유형을 유지했다. 올해는 4개의 제시문을 주고 '예술의 효용'을 옹호 또는 비판하라고 요구했다. 김인묵 입학관리처장은 "인문.사회적 배경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풀 수 있는 평이한 주제였다"며 "학생들이 마음껏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주제여서 독창적으로 논지를 전개한 답안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새로운 발상도 탄탄한 사고와 표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황된 주장에 그치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논리 체계와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2008학년도에는 언어 논술과 수리 논술이 통합돼 문제의 난이도는 더 낮아질 것이며, 수리가 결합되므로 수식을 글로 풀어 써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고민의 흔적 담긴 답안에 점수

올해 정시 논술은 4개 제시문을 주고 '보편 문명'에 대한 견해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남경희 출제위원장은 "보편 문명은 고전적 주제이지만 우리의 현재적 삶과 연관이 있다"며 "미국적 가치를 따르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입장, 영토와 역사 분쟁이 그치지 않는 상황,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펼쳐지는 갈등 양상을 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혜영 채점위원장은 "뚜렷한 주장과 고민의 흔적이 있는 논술에 좋은 점수를 줬다"며 "예년에 비해 표현력이 좋아졌고 제시문을 그대로 베껴 적는 글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 위원장은 또 "사고력을 키우려면 독서가 가장 좋지만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토론하면서 내용을 정리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남 위원장도 "교과서에 소개된 분야별 사상가들의 저서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지 축약본으로 결론만 암기한다면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균관대…지나치게 많은 인용은 오히려 감점

"논제가 요구하는 내용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인용은 오히려 감점 요인이다."

'절대 빈곤'의 해결 방법을 물은 성균관대 김상옥 출제위원장의 말이다. 빈곤과 관련된 통계 자료와 제시문 6개를 파악해 요약하고 빈곤을 공동의 문제로 삼아 해결하는 게 타당한지 논술하라는 문제는 예년에 비해 쉬었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문제의 요구 내용이 단순하고 선명한 만큼 권위있는 원전을 인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견해를 논술하라는 문제보다는 요약에 서툰 학생이 뜻밖에 많았다"며 "요약은 제시문에 드러난 견해를 균형 있게 정리해 자신의 문장으로 서술해야 하는데, 원문을 그대로 베끼거나 자기 견해와 맞는 내용만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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