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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서로가 국가로 불인정|유엔 동반시대 계기로 본 법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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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북한의 통일정책을 남북이 갖고 있는 법체계에서 보면 논리의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분단」이라는 현실과 「통일」이라는 당위가 상충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한은 북한을 「동반자적 관계」라고 하면서도 북한이 대남 적화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고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도 사상·제도를 그대로 두고 통일하자는 연방제방식을 제시하면서도 「남조선혁명」을 겨냥한 당규약을 갖고 있다. 이같은 「모순」은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으로 남·북한이 유엔을 무대로 활동을 벌임에 따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이런 측면에서 남북이 법적으로 처해있는 문제점과 대응책을 점검해 본다.
◇현황=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게 되면 각각 대외관계에서는 「국가」의 자격을 갖고 활동을 벌인다.
이와 함께 마약추방·빈곤구제 등 유엔기구가 벌이는 각종 활동에도 한 「국가」로서 참여한다.
다만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별개 사안이다.
유엔회원국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상대방 국가를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국제사회에서 확립된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엔가입 이전상황과 비교해보면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간주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진전된 상황을 조성시킨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남조선 해방」을 추구해온 북한으로서는 유엔가입이 「껄끄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남북은 이같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움직임은 보이면서도 각자의 통일방안이나 관련법규 체계를 보면 「국가인정」과는 거리가 멀게 규정돼 있다.
먼저 남측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보면 남북관계를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로 보아 분단 쌍방이 민족의 재결합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호 국제법상주권국가간의 승인이 원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즉 국제법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국가승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이같은 방안의 밑바닥에는 만약 북한을 국가로 승인, 국제법상 「국가연합」개념을 적용할 경우 예상되는 「분단고착화」라는 역풍을 맞을 수 없다는 정책기조가 깔려있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도 마찬가지다.
이 방안에서는 남북이 지역정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라는 개념을 적용시킬 여지가 없다.
게다가 양측의 헌법·당규약을 살펴보면 상대방을 「국가」로서 승인하는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들이 규정돼 있다.
남한은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3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 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했다.
물론 이 규정이 반드시 북한을 수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에 대해선 관계·학계에서 의견이 일치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국가보안법의적용을 받는 근거가 헌법3조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국가보안법 2조에 따르면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으로 돼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남한 헌법3조에 규정된 영토중 휴전선 이북을 참칭한 것으로 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는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특히 헌법 3조와 관련,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개최됐던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안병수 대변인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측의 이 조항은 백두산에 깃발을 꽂자는 것 아니냐』며 반발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측면은 북한의 노동당규약이나 헌법을 보면 똑같이 적용된다.
노동당규약을 보면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돼있다.
사회주의 헌법5조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들은 북한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혁명논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한은 한편으론 「국가승인」이라는 길로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에 역행되는 법적·제도적 장치도 동시에 갖고 있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요약된다.
◇대응방안=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은 「영토조항」에 대해 이를 「적절히 해결」해 보려는 움직임이 양측에서 신중히 제시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쪽은 북한이다.
비록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북한은 5월 북경에서 열린 제3차 북·일 수교협상에서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우리의 주권은 한반도의 절반밖에 미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표명은 비록 「조선은 하나」라는 전제조건을 달고는 있으나 처음으로 관할권을 북한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앞으로 고위급회담이 재개될 경우 이 문제와 관련, 어떻게 나올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한 내에서는 우선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헌법 3, 4조의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장희 교수(외대)는 최근 한국법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헌법3조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아 물리적인 정복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북한의 국내법체계정비도 요구된다면서 남북한간 평화공존을 위한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기본관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교수의 이같은 입법론적인 접근방법에 대해 반론도 없지 않다.
정부의 한 고의당국자는 『헌법3조는 분단 극복과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의 의지를 정책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정부는 휴전선 이북에 독립된 정치실체가 있고 이를 평화통일의 상대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굳이 헌법3조를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당국자는 『남북이 서로 영토가 같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남북의 영토를 각 기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한정할 경우 북한의 인적·물적 자산에 대해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는 월남인사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함께 「분단고착화」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학계 일부에서 새로운 헌법해석을 통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장명봉 교수(국민대)는 『통일의 걸림돌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남한헌법 3, 4조나 북한헌법 5조 등에 대한 정비작업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우선 우리측 입장에서 볼 때 헌법개정에 따라 복잡한 문제가 현실적으로 제기되므로 새로운 해석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우리 헌법이 전문을 포함한 전법체계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목은 「평화통일」이므로 영토조항을 규정한 헌법3조만을 떼내 여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북한은 현재 처해 있는 통일정책과 법체계간의 괴리를 어떻게 조정해 가느냐의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당분간 이같은 괴리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후 『하나의 조선이라는 정책은 포기된게 아니다』(북),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남)는 식으로 남북당국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국내의적인 요인으로 진전돼 가는 국면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결국 동·서독과 같이 기본조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이같은 괴리현상은 상당한 수준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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