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선 주자 풍년이 들었다. 대선이 1년10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출마의 뜻을 밝히고 대선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정치인이 16명에 이른다. 여당인 공화당과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에서 각각 8명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앞으로 4~5명이 가세할 가능성이 있어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양당의 경선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2008년 11월 실시될 대선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민주당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첫 여성 대통령, 힐러리를 위협하는 같은 당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은 첫 흑인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다. 21일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처음으로 대선의 문을 두드린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이다. 지난해 말 일찌감치 대선 준비에 들어간 공화당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소수종교인 모르몬교 신자다.
민주.공화당의 대선 후보 쟁탈전은 현재 각기 3파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에선 힐러리, 오바마를 상대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직물공장 노동자 가정 출신인 에드워즈는 2004년 자신을 부통령 후보의 지위에 오르게 한 '두 개의 미국(미국은 빈자와 부자의 나라)'이란 슬로건을 다시 내세워 노동자와 서민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16~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힐러리가 41%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오바마(17%), 에드워즈(11%)가 따르고 있다. 민주당에선 각각 2000년과 2004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던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존 케리 전 상원의원이 다시 대통령에 도전할 경우 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
공화당에서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 롬니 전 주지사의 3파전이 전개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ABC 조사에서 줄리아니는 34%, 매케인은 27%, 롬니는 9%의 지지를 얻었다. 이탈리아계인 줄리아니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복구작업에 헌신, 미국인들에게서 큰 박수를 받았다. 그가 경선에서 승리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지사나 상원의원을 지내지 않은 첫 대통령 후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2000년 당 대선 후보 경선에 실패한 매케인 의원은 해군 제독을 지낸 할아버지.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에서 23년간 복무했다. 베트남전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수용소에서 5년 반을 지냈다. 큰아들은 해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이며, 동생은 해병대 훈련을 막 마쳤다. 매케인은 이라크에 미군을 증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그러기로 한 만큼 매케인의 둘째 아들이 이라크 증원부대에 배속될 가능성도 있다.
롬니는 1994년 실패한 상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동성애자의 권리와 낙태를 옹호했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낙태와 동성애자를 이해하는 입장인 줄리아니와 매케인을 공격하고 있다. 그는 두 사람보다 자신이 더 공화당다운 후보라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 인구의 8%밖에 안 되는 모르몬교 정치인이 개신교의 정당인 공화당의 기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