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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육상스타" 추모비 건립|24년 오륜 4백m 「금」 에릭 리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군국주의 일본의 군화발아래 무참히 짓밟혀간 한 스포츠 스타가 사후 무려 46년이 지나 다시 세인들의 마음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24년 파리올림픽 남자4백m 금메달리스트, 그리고 당시의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화한 아카데미 수상작 『불의 마차』의 주인공인 에릭리델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그의 무덤가에는 지난 47년 동안의 슬픈 세월을 말해주듯 무성한 잡초와 쓸쓸한 나무십자가 하나만이 외롭게 서있을 뿐이다.
스코틀랜드인으로 중국에서 선교사업을 하던 부모를 둔 리델은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24년 파리올림픽에 출전, 남자 4백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1백m에서도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으나 그의 신앙과 배치되는 일요일 경기출전을 포기함으로써 올림픽의 영광대신 믿음을 택하는 독실한 신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은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듯 리델에게도 2차대전과 더불어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모든 외국인들을 잡아들이면서 당시 리델이 거주하던 북경동남쪽 7백㎞의 웨이팡(패방)에서만도 1만8천명이나 되는 외국인들이 포로수용소에 감금당했다.
리넬은 거기에서 3년 동안의 감금생활 끝에 종전을 불과 몇달 앞두고 뇌종양으로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그후 46년. 이제는 웨이팡 제2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그때 그 수용소에 당시 같이 감금돼 있었던 네 사람을 포함, 39명의 스코틀랜드인들이 찾아와 리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킬트(스코틀랜드 고유의상)를 입은 남자들이 풍적(스코틀랜드 전통악기)을 연주하는 모습에 호기심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그들 중에 리델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당시 9세의 어린 나이로 리델과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미셸은 그때의 「에릭 아저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사람들을 모아 함께 경주하면서 항상 맨 뒤에서 출발해 제일 먼저 골인하던 리델의 모습을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리고 있다.
미셸 외에도 당시 함께 수용소 생활을 한 세 사람은 철조망·서치라이트·감시탑이 서있던 그때의 수용소를 그들의 기억의 편린 속에서 다시 들춰내고 있다.
지난 주말 그들은 옛 수용소터인 학교운동장 한 모퉁이에 리델을 추모하는 화강암 기념비를 세웠다.
영어와 중국어로 새겨진 이 기념비에는 평소 리델이 애송하던 성경 이사야서의 시구와 리델의 간단한 약력이 적혀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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