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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풍토 정화가 먼저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광역의회 선거가 날로 혼탁해 가는 가운데 여야정당·정치인들이 법과 상식에 어긋난 언행을 예사로 하고 있어 과연 이대로 넘어가서 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납득되지 않는 대표적인 예가 공천금품수수설과 관련된 신민당의 태도와 검찰의 대응방식이다. 지금 검찰과 신민당은 관례에도 없고 법치국가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변칙게임을 벌이고 있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민자당의 유기준 의원이 공천내정자들로부터 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같은 명목으로 2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자인한 신민당의 김봉호 의원은 아직도 내사단계에 있을 뿐 아니라 신민당의 총력방어 태세에 검찰이 주춤하고 있는 인상이다.
김의원의 변명인즉 자신의 지역구 광역의회 공천자 오모씨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은 것은 특별당비일뿐 공천의 대가로 받은 뇌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김대중총재는 여당이 정치자금을 독식하고 있는 풍토에서 선거를 맞아 재력가로부터 특별 당비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굳이 뇌물공천여부를 조사하려면 선거나 끝내 놓고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자금면에서 여당보다 옹색하고 애로를 많이 겪고 있는 야당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전혀 간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설령 그런 곤경을 이해하더라도 지금 신민당이 펼치는 논리와 대응방식에는 모순과 문제점이 적지 않다.
우선 지난달 이해찬 의원 등이 신민당의 공천비리에 환멸을 느끼고 탈당했을 때 사무총장인 김의원은 『공천과 관련해 한푼도 받은바 없으며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신민당은 당기구를 통한 「특별당비」모금사실을 공식화했다. 당내 재력가의 자발적 헌금이란 얘기다. 그러나 헌납자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공천을 받았다니 「특별당비」의 연계성을 당사자들 스스로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그런 말장난이 형사소추를 피하는 빌미가 될 수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또 문제가 있더라도 선거가 끝날때까지는 조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법집행의 예외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국민의 관심과 열망은 공명선거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공명을 저해하는 위법과 탈법에 예외를 두는데 다수 유권자가 동의할리 만무하다.신민당도 이제 긴 안목이 필요하다. 공천과 정치자금의 끈끈한 고리를 끊기 어렵다면 그것을 불법화한 정치자금법을 고치든지 그렇지 못했다면 법을 지켜야 한다. 궁색한 사후합리화나 법집행의 예외를 요구하는 것은 지자제 공명선거에 거는 국민의 정치적 여망에 맞지 않고 신민당의 도덕성에 타격을 줄 것이다.
우리는 검찰의 태도에 대해서도 당당하지 못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유의원때도 그랬지만 검찰은 무엇이 두려워 이 눈치 저 눈치 보는가. 엄정한 소추권의 행사는 커녕 여론의 향배에 따라 마지 못해 공권력을 행사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검찰의 존재나 법의 형평과 존엄성에 스스로 흠집을 낸다는 점을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검찰은 비단 뇌물공천뿐 아니라 선관위와 여야 정당이 연일 쏟아놓는 선거부정의 고발사태에 대해서도 엄정함을 지켜주기 바란다. 야당 못지 않게 검찰도 신뢰회복의 기로에 서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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