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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지구촌의 막둥이' 인간 동물 선배에게 좀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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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궁리, 380쪽, 1만6800원

"제 버릇 개 못 준다" "곰같이 미련하다"에서 "짐승보다 못하다"까지 동물을 낮춰보는 표현이 흔하다. 말이 생각을 대변하는 만큼 이런 말들은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 등이 물고기의 형태를 본따 유선형으로 만들어지는 등 동물 세계의 지혜가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예가 셀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손 꼽히는 동물학자인 지은이는 당연히 동물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쪽이다. 근거도 타당해 보인다. 기껏해야 20여만 년 전에 태어난 인간은 지구촌 동물 중 막둥이로, 수천만 년 앞서 태어나 생존에 적응해온 다른 선배 동물들에게서 배울 것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란다.

공생 관계를 설명한 '서로 돕는 사회'는 종(種)을 뛰어넘어 서로 돕고 사는 동물사회의 모습을 여럿 보여준다. 큰 물고기의 입 속을 청소해주며 먹이를 얻는 작은 물고기들, 나무를 갉아먹고 사는 흰개미의 뱃속에 기생하며 나무의 셀룰로오스를 분해해주는 미생물 이야기가 나온다. 잘 알려진 진딧물과 개미의 공생관계도 언급하지만 놀랍게도 '가축'을 기르는 개미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외양간에서 가축을 묶어 기르듯이 깍지벌레들을 굴속에 데려다 키우는 개미들도 있단다.

이들이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공존의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이라며 자연을 마구 훼손해 환경 위기를 자초하는 독불장군 같은 태도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거의 모든 종이 훌륭한 어미인 조류 중에 타조의 특이한 사례도 나온다. 타조 암컷은 새끼를 낳아 여기저기 몰고 다니며 키우는데, 새끼를 몰고 다니는 다른 암컷을 만나면 싸움을 해서 이긴 편이 남의 새끼까지 다 데려간다. 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새끼가 많을수록 자기 새끼가 포식동물한테 잡아먹힐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결국 진화의 산물이라며 진화학과 의학을 접목한 '다윈의학'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다윈의학은 모기 같은 매개체가 옮기는 질환과 대인접촉으로 옮는 병은 병원균의 독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며 이를 진화로 설명한다. 말라리아 균은 어차피 모기가 다른 숙주를 찾아줄 것이고 환자가 축 늘어져 있는 편이 모기가 맘 놓고 달려들 수 있기에 독성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반면 대인접촉을 해야 옮겨지는 감기 바이러스는 환자가 자꾸 돌아다니며 악수도 하고 뽀뽀도 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되기 때문에 독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6개월 간의 TV강연 내용을 정리한 책의 범위는 넓다. 동물들의 교육, 자식 사랑, 암수 동상이몽은 물론이고 동물의 언어.경제학.정치 등을 다루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어지러울 정도다. 게임이론, 고정화 이론이 툭툭 나온다. 그래도 "자연에서 배운다. 알면 사랑한다"를 염두에 두면 재미를 위해서나 교양을 위해서나 훌륭한 읽을거리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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