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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미국 사회의 어둠 들추기…삐딱한 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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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밤의 열기

3월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32-2188

"다리 하나 건너일 뿐인데 모든 게 다르다고. 사무실, 점심시간…. 그쪽 사람들은 최고의 영화만을 본다고."

언뜻 보면 평범한 대사다. 그러나 강남.강북의 차별성이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내포돼 있는 계급성.지역성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듯싶다. 무슨 심각한 연극 아니냐고? 다름 아닌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이하'토밤')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토밤'은 아무 생각 없이 진탕 신나게 놀고 흔들어대는 뮤지컬이 아니다. 물론 디스코로 1970년대 후반을 강타한 비지스의 음악을 전제로 만들었기에 하늘을 푹 찌르는 손가락과 현란한 스텝, 숨가쁘게 내달렸다 때론 부르럽게 넘어가는 음악이 중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청춘물들이 젊음의 방황과 꿈, 혹은 남녀 간의 애정만을 소재로 다루는 것에 비해 '토밤'엔 70년대 미국과 뉴욕 서민의 삶이 적절히 녹아 있다.

지금은 비록 베이 리지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여주인공 스테파니는 언제나 맨해튼 중심가를 꿈꾸는 여성이다. 2000년대 한국의 언어로 달리 해석하면 '된장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토니(남주인공)의 아버지는 "4달러라, 넌 4달러짜리야"라고 빈정대지만 "예-. 근데 실업자한테 누가 봉급 인상이라도 해 주시는 거 봤어요?"란 반박을 들을 수밖에 없는 사오정 세대다. 부모님의 희망대로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찾아 부모와 등을 지는 토니의 형, 낙태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조이, 아무리 댄스 대회라도 결국엔 피부색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인종 문제 등…. 춤과 노래로 포장했지만 '토밤'은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까발리는 과감성도 보여준다.

다만 이미 비보이 등 최고 수준의 댄스를 많이 접해 본 한국 관객의 눈높이엔 '토밤' 출연진의 외모와 춤솜씨가 다소 올드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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