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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폭행 놓고 표계산에 골몰/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원식 총리서리에 대한 학생들의 집단폭행사태가 국민적 격분을 일으키는 가운데 정치권은 정국전개에 미칠 파장의 강도를 따져보고 있다.
국민감정이 공분으로 나타나자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 신민당 총재도 서둘러 기자간담회를 자청,개탄을 했다.
그들은 늘상 이런 사건이 터질때 하던 『폭력은 적이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진부한 얘기는 별반 가슴에 와 닿지 못했다.
더군다나 각 당이 폭력을 비난하는 성명의 뒷전에는 다가오는 광역의회선거를 의식,『수세에서 벗어나는 반전의 계기』『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등 이해타산 뿐이다.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초래된 원인에 대한 정치적 지도그룹으로서의 책임,그리고 그처럼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한 정치인으로서의 반성같은 것을 눈씻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광역의회선거와 연결시키는 근시안적 편협성만 두드러진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정총리가 외대에 간 것은 의도적』(민주당 장기욱 선거기획단장)이라는 해괴한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정총리서리가 미리 사실을 알리고 보도진을 현장에 수행토록해 이런 사태가 야기됐다는 것이다.
『표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는 말도 이런 시각이나 진배 없다. 이번 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보인 이런 반응은 거부감을 넘어 혐오감을 주고 있다.
정치가 상황을 주재하지 못하고 돌발사태에 의해 끌려가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 과격학생들의 폭력과 공권력의 과잉 「질주」 사이에서 빚어지는 돌발적인 사태속애서 이리 저리 떠다니기만한 기회주의적 속성과 유보적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 견해 표명없이 시국흐름을 적당히 타고 운동권의 동향에 눈치나 보는 「편승 정치」가 바로 급진학생들의 과격행동이 기생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 아닌가.
그러다보니 정치불신은 커지고,급진학생들마저 정치권의 속셈 뻔한 행태를 우습게 알고 기성정치를 매도하는 자업자득으로 나타나왔다.
정치권도 이젠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야권의 일각에서 공권력의 반격을 경계하는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켜져야할 최소한의 질서」마저 깔아뭉개는 도전과 폭력에 밀리다가 언젠가는 정치권전체도 밀려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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