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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생일 알리 전설의 삶 '마지막 공'이 울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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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가장 위대한 복서에게 마지막 공이 울릴 날이 멀지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던' 무하마드 알리가 17일 65세 생일을 맞았다. AP통신은 "파킨슨병으로 일그러진 알리는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보인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알리가 최근 몇 주 사이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가족들은 66세 생일을 맞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썼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이제 남은 것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알리는 오래전에 파킨슨병에 걸렸다. 여자프로복서인 그의 딸 라일라 알리는 "아버지는 거의 펀치를 맞지 않고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복싱과 건강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21년간의 긴 복서 생활이 그의 건강을 망쳤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엔 척추 협착증 수술도 받았다. '링 위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지금 말을 하지 못한다. 가족들과는 표정으로 대화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마음은 아직도 맑고 날카로우며 인간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알리는 평화롭게 산다. 그러나 지상의 평화는 오래 남지 않은 것 같다.

무하마드 알리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꼽힌다. 그의 전성기이던 1960~70년대는 강자들이 우글거린 복싱 황금기였고, 그는 거의 모든 선수를 무너뜨렸다. 통산 61전56승(37KO)5패를 기록하며 세 차례나 세계챔피언에 오른 그는 체급을 뛰어넘어 역대 가장 뛰어난 복서로 꼽힌다. 그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었다. 스포츠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킨 사회 운동가였다. 맨주먹으로 현대사의 격동기와 맞서 그 물꼬를 바꿨으며 은퇴 뒤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뛰었다.

알리는 42년 1월 17일생이다. 태어날 때 그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큰 키(1m91㎝)의 헤비급 선수임에도 그는 매우 빨랐다. 얼굴 가드를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변칙 복서였다. 18세인 60년 로마 올림픽에 출전,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따자마자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프로데뷔전을 치렀다.

2년여 동안 19승무패(15KO)의 전적을 올린 그는 64년 당시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했다. 누구도 클레이의 우세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화려한 수사와 교묘한 심리전으로 리스턴을 압박했다. 7라운드를 알리는 공이 울렸을 때 리스턴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65년 5월 벌어진 리턴매치에서 클레이는 1회에 리스턴을 링에 눕히고 포효했다.

그는 세계챔피언의 안락함에 머물지 않았다. 66년, "나는 흑인 운동가 맬컴X의 추종자이며 이슬람교도다. 백인들이 지어준 노예의 이름을 쓰지 않겠다"면서 클레이(진흙)라는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베트남전 징집명령에는 "전쟁은 코란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베트콩이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면서 거부했다. 알리는 곧바로 미국 내에서 경기 금지명령을 받았고, 이듬해 헤비급타이틀을 박탈당하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투쟁했다. 결국 70년에 경기 참가가 허용됐고, 71년 대법원은 알리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71년 3월, 그는 컴백했지만 조 프레이저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15회에 다운을 당했고 첫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알리는 다시 일어섰고, 73년 프레이저에게 설욕했다.

74년 자이레 킨샤사에서 당시 챔피언인 '원조 핵주먹' 조지 포먼에게 도전했다. 전성기가 지난 32세의 알리가 매 경기 초반 KO승으로 전승 가도를 달리던 25세 포먼에게 도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로 비쳐졌다. 그러나 '정글의 격전'이라고 불린 이 경기에서 알리는 링에 기댄 채 포먼의 체력을 빼는 작전으로 '기적 같은' 8회 KO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7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 프레이저와 세 번째 만났다. 두 선수의 의지는 대단했다. 14라운드가 끝났을 때 프레이저의 눈은 퉁퉁 부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프레이저의 트레이너는 경기 중단을 요구했다.

이 격전 이후 알리는 하강곡선을 그렸고 81년 영원히 은퇴했다.

그러나 은퇴 후 활동은 알리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인종.종교 간의 이해를 위해 뛰었다.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전 세계의 굶는 아이를 위해 2200만 끼를 제공했다. 91년 '미국의 정신' 상을 받았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성화 점화자로 나타났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2005년에는 그의 고향에 '무하마드 알리 센터'가 생겼다.

그의 생애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성편력도 있었다. 그는 네 차례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뒀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의 사이에서 또 다른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셋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 라일라는 여자프로복서로 활약하고 있다. 알리는 젊은 시절 "가슴을 때려야 하는 복싱은 여자에게 맞지 않는다"고 했으나 늘그막엔 경기장을 찾아 딸을 응원했다.

그럼에도, 그는 승리자다. 마지막 공이 울리고 알리의 마지막 라운드가 끝났을 때 팬들은 20세기 최고의 영웅에게 기립박수를 보낼 것이다.

성호준 기자

◆알리는

1942. 1. 17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출생

1960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

1964 세계권투협회(WBA) 헤비급 챔피언(소니 리스턴에 8회 KO승)

1966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

베트남전 징집 명령 거부, 챔피언 박탈당하고 5년형 선고

1970 경기 참가 재개

1971 무죄 판결

1974 WBA 헤비급 챔피언(조지 포먼에 8회 KO승)

1978 WBA 헤비급 챔피언(레온 스핑크스에 판정승)

1981 현역 은퇴. 통산 61전 56승(37KO) 5패

◆파킨슨병은=뇌 깊숙이 위치한 흑색질이라는 부위의 신경세포가 줄어드는 중추신경계 질환으로, 치매와 더불어 치명적인 노인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장애에서 시작해 병이 깊어지면 음식을 먹거나 말하는 동작도 원활하지 않게 된다. 1817년 영국의 J 파킨슨이 보고했으며, 국내에도 약 5만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프로레슬러 출신 장영철씨가 지난해 8월,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차경복 전 감독이 지난해 10월 파킨슨병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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