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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년 뒷걸음 구 동독 농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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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농촌지역의 경제사정이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작황이나 시장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데다 자금회전이 느리고 경영 또한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업이라는 기술의 속성상 농민들은 타 분야로 전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인 산업구조상의 변화가 닥쳤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고, 농민들의 희생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통일 후 구 동독의 상공업지대에는 아직 미미하기는 하지만 서쪽과 외국의 자본이 들어와 점포를 개설하고 공장을 새로 짓는 등 가시적인 변화가 일고 있지만 이것마저 없는 농촌지역의 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구 동베를린 라인하르트가 14에 위치한 구 동독의 농민동맹본부를 찾았다. 『구 동독 농촌의 변화란 한마디로 「30년 전으로 되돌아가기」입니다. 즉 지난 1960년 구성된 집단농장들을 다시 해체,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이지요.』
농민동맹의 유르겐 하임 박사(59)는 총 4천5백19개에 달하는 작물·가축·원예 및 채소집단농장(LPG)과 인민소유농장(VEG)이 현재 분해작업 중에 있으며 지금까지 3천5백여개의 개인 및 기업형 자영농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89년 말 85만명이던 농민수는 실업 35만명, 연금생활자 6만∼8만명, 전직 7만∼9만명 및 서쪽 이주자 등을 빼고 현재 30여만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구 동독의 농촌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올해 말까지 집단농장을 모두 분해해 자영농을 만들 계획이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농보다는 기업형태의 사영집단농장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이유로 그는 속성상 변화를 꺼리는 농민들이 앞날에 대한 걱정과 자본 부족 등으로 재결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원금 확대 요구>
집단농장 1개의 평균 경작면적은 5천㏊(약1천5백만평)였으나 사영농들은 대개 60∼1백㏊(18만∼30만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민영화된 면적은 전체의 5%선이라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집단농장의 해체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그는 재산 및 부채의 분배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집단농장에 내놓은 토지의 면적과 가축 및 농기계 지입분, 그리고 그간의 노동기간 등을 근거로 토지와 가축·농기계 등 농장의 재산을 재분배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잡음도 많습니다. 더욱 어려운 일은 76억마르크에 달하는 집단농장 전체의 부채 중 정부가 14억마르크를 탕감해주기로 결정했지만 누구의 빚을 얼마나 탕감해줄지의 여부를 결정하는게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정부가 30억마르크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나머지는 머리수대로 나누되 농민지원기금으로 책정한 8억마르크를 두배 이상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본 정부는 농민지원기금을 l2억마르크로 늘리는 이외에 아직 별다른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농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3월15일 구 동독 전역의 농민대표들이 베를린에 모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농민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 등을 보수하고 있고 실직농민을 위한 기간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으나 문제는 역시 돈입니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농기 90%가 낡아>
통일 후, 정확히는 지난해 7월 경제·사회통합 이후 구 동독 농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개황을 하임 박사로부터 설명 받은 뒤 농촌의 실상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3백㎞쯤 떨어진 전형적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농촌지역으로 갔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는 우리 나라의 호남평야정도에 해당하는 구 동독의 곡창지대다.
산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북독일평원에 자리잡고 있는 이 주는 구 동독지역에서 생산되는 밀의 20%, 호밀의 30%, 보리의 30%, 유채의 50% 등을 생산하고 있다.
우선 해체된 집단농장 출신농민들이 다시 기업형태의 사영집단농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펜츨린이란 소도시의 한 농장을 방문했다.
「아그라르(농업) 유한회사」-. 지난해 6월말 이 지역에 새로 생긴 집단농장의 이름이다.
『원래 6개 마을 3천5백명의 인구가 「펜츨린 곡물집단농장」과 「펜츨린 가축집단농장」에 소속돼 3천8백㏊의 경작지와 젖소 2천5백마리, 돼지 4천마리를 사육해 오다 지난해 경제통합직전 3백50여명이 기업형태의 새로운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농장 사장인 크롤 콘씨(37)는 이렇게 농장설립 과정을 설명한 뒤 「그러나 현재는 이 가운데 76명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전직했거나 실업자가 됐다』고 말했다.
구 집단농장 소유였던 3천8백㏊는 원주인이 나타나 원상 회복됐으며 나머지 3천㏊는 대부분이 현재의 농장에 다시 지인됐고 나머지 일부는 농장에 참여하지 않은 농민들이 자영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이 농장은 트랙터 60대, 콤바인 l4대, 착유기 2대, 트럭 15대, 포클레인 6대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으나 90% 이상이 낡은 것으로 교체가 시급하다는 것이 콘사장의 설명이었다.
이 농장은 정부로부터 6백만마르크를 지원 받았지만 서쪽 농민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장비개체·시설투자 등에 앞으로 8백만마르크의 돈이 더 필요할 것으로 콘씨는 전망하고 있다. 결국 토지 등을 담보로 은행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젊은 층 거의 떠나>
조금씩,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 마을을 나와 다시 50㎞쯤 북서쪽으로 라덴이라는 인구 2백명의 농촌마을로 갔다.
「새농민」(개인 자영농민을 동쪽지역 농민들은 이렇게 부름) 슈티베씨(63) 일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젖소의 축사를 고치고 있던 슈티베씨의 둘째아들 카를 하인츠군이 반갑게 맞으며 안으로 안내했다. 마당에는 그가 지난 1윌 중고로 샀다는 구 서독 오펠사의 카데트 승용차와 구 동독 트라반트 승용차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지난해 6월 두 아들을 모아놓고 장시간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이 마을에 남아있는 젊은이는 나의 두 아들 밖에 없습니다. 모두 이웃 귀스트로시나 서쪽으로 나갔지요. 결국 두 아들을 설득, 농민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슈티베씨의 큰아들 한스 귄터씨(32)는 곡물재배를, 둘째아들은 가축사육을 하기로 분야를 나눴고 아버지는 은행돈을 빌리거나 판매 등을 맡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토로했다.
『저라고 남들처럼 대도시나 서쪽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농사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일인만큼 열심히 일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젊은 새농민 카를하인츠군의 희망에 부풀어 있는 환한 얼굴에서 구 동독 농촌의 미래가 어둡지만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베를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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