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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여성 국방장관 지낸 엘리자베스 렌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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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장군들은 물론 퇴역 군인들까지 나서서 반발했어요. 여성운동가들조차 '남자들이 놓은 덫에 걸렸다'며 반대했지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여성부 주최로 열리는 '아태 여성담당 국가기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엘리자베스 렌 박사는 199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국방장관이 된 핀란드의 여성 정치인이자 유엔에서도 손꼽히는 여성.인권 전문가다. 그는 핀란드 평등부 장관.유럽의회 의원.유엔 사무차장 등을 지냈다.

"솔직히 말하면 국방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겁이 덜컥 났어요. 하지만 기초의원부터 출발했던 경험을 살려 일을 하니 국방장관도 할 만했지요."

"5년간의 재임 때 국민적 인기도 매우 좋았다"고 자평한 그는 이후 스웨덴.노르웨이.프랑스.크로아티아.칠레 등도 여성 국방장관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제가 장관이 됐을 때 핀란드에선 남자만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었지만 젊은 여성들이 자원 입대를 강렬히 희망했어요. 여론조사와 국회 토론을 거쳐 여성에게도 군대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죠." 현재 매년 4백여명의 여성들이 자원입대하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요즘 군대는 육체적인 힘보다는 세심함과 민감함을 더 필요로 해 여성들이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원시원한 말투에 유머까지 겸비한 그는 여느 서양인과는 달리 자신이 예순여섯의 나이에 네명의 자녀와 무려 열세명의 손자녀를 둔 할머니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는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애 딸린 여자들끼리 모여 휴식을 즐기는 일은 꿈도 못 꿨다"고 핀란드 사회의 변화를 전했다. 그는 현재 핀란드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헬싱키 시장, 가장 큰 주의 주지사가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또 국회의원의 38%가 여성이다.

"핀란드 여성들이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어요.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보육 체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는 흥미롭게도 자신의 이력서 끝에 '47년 동안의 결혼생활'이라고 적었다. "사실 어느 가정이든 위기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전 정직함과 솔직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왔어요."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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