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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경제광장>유럽-전자산업이 한물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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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럽의 전자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의 필립스 등 유럽의 반도체생산업체는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다. 가혹한 감원조치로 10만여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유럽공동체(EC) 국가들의 지난해 전자부문 무역적자는 3백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유럽 전자산업의 쇠락은 지나친 보호무역주의, 경쟁의식결여, 충분하지 못한 국내시장 때문으로 요약된다.
더군다나 전자산업은 자동차·항공·금융서비스 등 여러 첨단산업의 기본이 돼 이 산업의 부진은 유럽 전체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EC의 각 국가들은 전자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아래 보조금을 주면서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책은 문제를 연장시켰을 뿐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C국가들의 보조금은 기술개발투자에 집중됐다. 그러나 실험실 안에서의 기술개발은 효율적인 제품생산과 판매촉진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일본업체들은 제품개발·생산과정 혁신·시장수요예측이 한꺼번에 연결돼 돌아가 유럽업체들을 제쳤다.
유럽업체들은 또 빠른 기술정보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미국은 중소기업들이 끊임없이 대기업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IBM과 같은 대기업이 흔들리는 것도 콤팩트마이크로 시스팀과 같은 중소 모험기업들의 기술혁신 때문이다.
일본 또한 국내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데, 유럽은 자기들끼리의 경쟁이 우선 약하다.
유럽의 전자메이커들은 작은 규모의 국내시장의존도가 너무 높다. 최근 유럽의 전자제품 시장은 확대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1인당 구매수준은 미국·일본에 비해 낮다. 게다가 유럽의 소비자들은 응용컴퓨터와 같은 첨단제품을 꺼리는 성향이 있어 제품개발을 더디게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C의 보호무역주의 또한 궁극적으로 전자산업발전에는 별다른 기여를 못했다는 분석이다. 80년대 이후 10년 동안 수입전자제품에 대한 EC의 거듭된 반덤핑관세부과는 외국산 컴퓨터와 VTR등 전자제품의 수입가격을 50%정도까지 높였다. 덕분에 유럽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았지만 반덤핑관세부과가 이들 기업들의 생산성과 투자를 높였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일본 후지쓰사가 영국최대의 컴퓨터생산업체인 ICL을 인수해 화제가 됐었다. 이 같은 일본·미국자본의 유럽진출은 유럽전자산업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호주의 무역장벽으로 버텨내려고 했지만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유럽으로 들어와 기존공장을 인수하거나 합작공장을 짓는 바람에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유럽의 전자산업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피나는 자구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산과 창업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강인한 체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위기극복의 이면에는 폭넓은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는데 유럽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로 지적되고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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