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뜻과 다르다고 매도하는 풍토 개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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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인 이오덕씨가 중앙일보 5월22일자(일부지방 23일자)에 쓴 『지하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제하의 글을 읽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몇 마디 적고자 한다.
우선 나는 여기에서 김지하씨의 문제가 된 글의 내용을 두둔하거나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김씨를 제명 처분한 것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자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먼저 분명히 하고자 한다. 다만 이오덕씨의 글 중 일부내용이 건전한 민주시민의 양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 점만은 적어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뜻에서 이 글을 쓰게되었다.
이오덕씨는 김지하씨를 비판하면서 그를 비롯한 일부의 한국작가들이 삶의 체험을 갖지 못한채 「방안에 앉아 머리로 생각만 하면서 글을 쓰고 살아가는」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신을 지탱하는 줏대가 없어 쉽사리 시류에 따르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이오덕씨에게 묻고 싶다.
한국작가 중 어느 작가가 충분한 삶의 체험을 갖고 있고 어느 작가는 그렇지 못해 방안에서 습득한 관념적 지식만 갖고 있는지.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느 작가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지 삶의 직접적 체험과 독서를 통한 간접적 체험으로 그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할진대 어떻게 한 작가를 삶의 체험이 전혀 없는 관념적 지식만의 소유자로 쉽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사상에 배치되는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은 다 그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싶다.
이오덕씨 자신은 풍부한 삶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의 체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다른 작가는 그렇게 쉽게 비판할 수 있다는 뜻인가.
나는 김지하씨를 잘 모른다. 다만 자기의 뜻에 안 맞는다고 한 사람을 자기 편한 대로 쉽게 매도하는 우리의 풍토가 아쉬울 따름이다.
더욱 개탄스런 내용은 이오덕씨의 글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오덕씨는 『한 사람이 한말은 표현과 양심의 자유가 되고, 더 많은 사람의 말은 표현도 양심도 아니란 말인가. 그것은 파시즘의 궤변이다』라고 말하면서 작가회의가 「민주를 배반하는」성식 이하의 글을 멋대로 발표하는 사람까지 포용 할 수는 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이 부분에서 필자는 이오덕씨가 과연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의견과 다른 소수의 의견이 핍박받고 봉쇄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추구하는 우리 모두 경계해야할 진짜 파시즘적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오덕씨의 글에서 다시 한번 구호상의 민주주의와 현실적인 행태에 나타난 비민주성의 모순을 발견하고 개탄해 마지않으며, 또한 작가로서 그의 무책임한 언어 구사에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임종훈<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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