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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일본소설 바람 왜 이렇게 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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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야흐로 일본소설 전성시대다. 일본소설은 이미 국내 소설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령했다. 설마, 하시는 당신을 위해 통계를 준비했다. 교보문고에 최근 4년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00위 목록을 요청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얻었다. <그래프 참조>

그래프가 지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래프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인은 한국소설보다 일본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 이 말고도 그래프는 몇 가지 사실을 더 말해준다. 하나는 일본소설 바람이 서너 해밖에 안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가 거듭할수록 일본소설 인기도가 상승한다는 점이다.

공급 물량에서도 일본소설 인기는 확인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일본문학은 509종.153만 부였다. 발행부수 153만 부는 국내 번역문학 시장의 32%를 차지하는 것으로, 미국문학(123만 부)보다도 앞선 수치다. 여기서 일본문학은 대체로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일본에서 시는 거의 고사(枯死)한 장르여서이다.

왜 이럴까. 여러 설이 난무한다. 뻑뻑한 한국소설에 염증이 난 젊은 독자가 일종의 대체재로 재기 발랄한 일본소설을 택했다는 추측이 현재로선 그나마 유력하다. 이밖에 한국소설 침체와 인터넷 문화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드는 축도 있다.

일본소설의 득세 원인을 규명하긴 쉽지 않지만, 인기 흐름은 어느 정도 파악된다. 1990년대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 몇몇 작가가 일본소설을 대표했다. 하나 2000년대엔 양상이 달라진다. 일부 대형작가에 의존하기보단 여러 명의 작가가 수시로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는 추세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상시 양산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예컨대 전통의 강세 장르인 10대 취향의 하이틴 소설을 비롯해,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로 대표되는 연애소설, 오쿠다 히데오.요시다 슈이치.이시다 이라 등의 가벼운 필치로 그려내는 세태소설까지 일본소설은 장르를 초월해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올 초엔 미스터리 추리작가 온다 리쿠가 돋보인다. 출판사 3곳에서 소설 5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 와중에,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본소설이 또 출간됐다. 일본이 세계 최고(最古)의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겐지 이야기'(전 10권, 한길사)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에 비하면 내 소설은 보잘 것 없다"고 극찬했다는, 한국의 식자(識者) 사이에서도 원어 그대로, 다시 말해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로 통하던, 일본 문학의 원류와 같은 고전이다.

좋은 책에 국경이 있겠느냐만, 심사가 복잡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쭙잖은 민족감정 따위가 동한 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숨 가쁜데, 1000년 묵은 일본소설을 받아보고 기가 죽어서 하는 말이다. 가위 일본소설 전성시대다. 어쩌면 좋으냐.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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