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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단독인터뷰] "한국, '위험한 이웃'중국 잘 다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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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강대국의 흥망(rise and fall of great powers)>의 저자 폴 케네디 교수. 최근 미국 쇠락론이 일면서 다시 바쁘다. 케네디 교수는 오늘의 강대국·약소국 등 세계 질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나? 또 2007년은? 본사 윤정호 객원편집위원이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


■ 반기문 새 사무총장과 유엔의 미래
조직 경량화 등 중간 수준 개혁의 적임자…외교관 경험 적극 활용해야
■ 브릭스(BRICs) 50년 장밋빛 낙관론에 대해
장기 초고속 성장은 불가능…양극화 등에 발목 잡힐 것
■ 2007년 한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기대감
지난 50년 발전 자부심 가져라…분열 대신 통합지향적 선거운동 바람직
■ 미국 쇠락론 인정하나?

<강대국의 흥망> 여전히 유효…현재 국력으로 미래 진단할 수 없다
■ 한·미 관계, 혹은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중 하나…‘한국 무관심’ 심화될 수도

2006년12월7일 오전, 미국 뉴헤이븐의 험프리 스트리트 소재 폴 케네디(Paul Kennedy·61) 교수의 자택. 5분가량 먼저 도착해 거실에서 교수를 기다리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인테리어에 눈이 갔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군함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는 흔히 <강대국의 흥망(rise and fall of great powers)>의 저자로 저명한 케네디 교수이지만 정작 그는 세계적 해군사(史) 권위자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그뿐이 아니다.

교수는 국제안보연구소(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를 설립해 경제·외교·군사전략을 총괄하는 국가 경영 전략인 거대 전략(Grand Strategy)을 연구해 왔는가 하면 2006년에는 유엔으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이번 인터뷰는 2007년을 맞아 과거를 통찰하는 혜안을 빌려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탁견을 <월간중앙>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작 우리나라에서 지명도가 대단히 높은 해외 지식인 중 한 명이지만 ‘수박 겉핥기’ 수준에 머무르고 만 케네디 교수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특히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이 이끌게 될 유엔 개혁과 <강대국의 흥망> 주제 중 하나였던 ‘미국 쇠락론(衰落論)’, 그리고 대미(對美)·대중(對中) 관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전략에 대한 교수의 견해를 듣고자 했다.

폴 케네디 교수가 포켓 행커치프를 단정하게 접어 넣은 짙은 남색 블레이저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윤정호 <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제가 수년 전 교수님의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인상 깊게 봤던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웃음) 실크햇과 모닝코트를 입으셨던 것으로 미루어 사진은 아마도 CBE(Command of British Empire)를 받으셨을 때 촬영하신 것인 듯합니다.

폴 케네디 교수 그렇습니다. 당시 입었던 모닝코트와 실크햇은 작위를 받는 이들만을 위해 런던의 웨스트앤드에 있는 양장점에서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죠. 버킹검 궁전에서 작위를 수여받고 왕실 전속 사진가와 사진을 찍던 기억이 새롭군요.

매년 9월에서 11월 사이에 열리는 작위 수여식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한다면,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James Bond) 역할로 잘 알려진 숀 코널리는 버킹검 궁전에서 작위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만큼 에딘버러에서 킬트를 입고 작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웃음)

윤정호 2000년 작위를 받으신 뒤로 크고 작은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불과 사흘 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2005년 8월1일부터 상원의 인준 없이 유엔 대사직을 수행하던 존 볼튼(John Bolton)이 사임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의 사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폴 케네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많은 이들은 사임에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만 저는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유엔은 볼튼과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강하게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 헌장은 유엔에 종사하는 이들은 청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많은 유엔 관리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관리들의 자질도 문제입니다. 인사정책이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번에는 유럽에서 했으니 이번에는 남미에서 …” 식으로 지역 안배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임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부시가 임명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지만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가 중도하차하게 된 이유는 부시가 지지를 철회해서도 아니고,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 회원국들이 그의 사임을 요구해서도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상원 외교위원회(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 소속 공화당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상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지난여름 의회 휴회기간에 볼튼을 임명해 자존심을 건드렸거든요.

존 볼튼 유엔 대사 사임으로 논란 가속화

윤정호이번 사임을 계기로 미국사회 내에는 유엔과 관련해 대단히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신문의 사설과 칼럼 면은 유엔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로 도배됐습니다.

폴 케네디 바로 본 것입니다. 먼저 ‘리버럴’들의 입장을 살펴보죠. 리버럴들이 유엔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해동포주의자(四海同胞主義者·cosmopolitan)적 관점입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장학금 또는 로즈(Rohdes)장학금 등을 받고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이들, 그리고 각종 국제 비정부기구(International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서 일하는 이들의 시각이지요.

사해동포주의적 리버럴들은 스스로 원해서 국제기구에서 일했거나 해외생활을 경험한 만큼 유엔에도 극히 우호적입니다. 한편 극우 성향의 리버럴도 있습니다.

<마더 존스(mother jones)>와 같은 잡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유엔을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유엔을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웃음)

윤정호보수주의자들의 유엔관을 잠깐 언급하셨습니다만, 보수주의자들이 유엔을 바라보는 입장도 대단히 다양하지 않습니까?

폴 케네디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는 세 가지 이유에서 유엔을 우호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첫째,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를 선호합니다.

정부의 크기를 키우는 정부 주도형 개혁이라는 이유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추진한 ‘뉴딜(New Deal)’을 반대했고, 1960년대에는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의 발목을 잡은 그들이 정부 위의 정부라고 볼 수 있는 유엔을 반길 이유가 없습니다.

▶ 윤정호 월간중앙 객원 편집위원(오른쪽)이 폴 케네디 교수와 대담 중이다.

둘째, 유엔이 주도하는 평화유지작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견해를 갖게 된 데는 평화유지작전에 참가했던 다수의 미군 병사가 1993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목숨을 잃는 참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계획도 이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엔을 믿을 수 없으니 평화유지활동을 하려면 유엔을 대체하는 군사작전 능력을 가진 국제기구를 만들어 하자는 것이지요.

반기문 총장 ‘중간 수준 유엔 개혁’ 단행 적임자

셋째, 유엔이 반(反) 이스라엘주의자들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인식합니다. 유엔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수도 없이 내놓았지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나 시리아·이란 등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아랍 국가나 단체들을 규탄하는 결의안은 거의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보수주의자들, 특히 많은 경우 유대인 지식인들로 이루어진 신보수주의자들은 유엔을 극히 비판적으로 봅니다.

물론 모든 보수주의자가 유엔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용주의적 공화당원(Pragmatic Republican)’ 또는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을 역임한 바 있는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의 이름을 따 ‘록펠러 공화당원(Rockerfeller Republican)’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유엔을 국익을 증진해 주는 지렛대로 여깁니다.

유엔 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41대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등을 망라하는 실용주의적 공화당원들은 사해동포주의자들과 달리 유엔을 신성불가침한 조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일방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엔 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유엔 산하 조직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증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윤정호많은 견해가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유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한 가지, 즉 “창설된 지 60년이 넘은 유엔은 개혁해야 할 때가 됐다”는 데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봅니다. 그렇지만 ‘어떤 개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의견이 엇갈립니다.

폴 케네디 그렇습니다. 현재 논의되는 개혁안 중 대표적인 것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안은 유엔의 크기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만연한 부패를 청산하고 무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불필요한 조직을 통폐합해 ‘작고 날씬한 유엔’을 만들자는 계획입니다.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제시 헬므스(Jesse Helms) 전 상원의원 등이 주장한 바 있는 이 같은 개혁안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조직 축소에 따른 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찮고 ‘그렇다면 어디까지 유엔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할 것이냐’는 데 대한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인도·브라질·일본 등은 다른 종류의 개혁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개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일본은 유엔 분담금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부담하고, 인도는 곧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이 될 나라며, 브라질은 자타가 공인하는 남미의 초강대국입니다.

그런 만큼 이들이 국력이나 기여도에 걸맞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어야겠지요. 그렇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상임이사국을 늘리기 위해서는 전체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없어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윤정호상이한 두 종류의 개혁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모두 이른 시간 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반기문 차기 사무총장이 추진했으면 하는,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으면서도 유엔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개혁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폴 케네디 차기 총장께는 중간 수준 개혁(mid-level reform)을 단행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중간 수준 개혁은 조직의 크기나 기능을 급격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개혁은 아닙니다.

대신 현존하는 조직 사이에 기능이나 역할이 중첩되는 것을 단계적으로 최소화하는 한편, 정보 수집 및 분석 기능 같이 꼭 필요한 기능이지만 아직 부족한 기능을 확충하는 방향의 개혁입니다.

급진적 개혁이 수반하는 저항을 최소화하는 한편 있는 조직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신임 사무총장이야말로 이 같은 개혁의 적임자라고 믿습니다.

오랜 기간 외교 관료생활을 하신 분으로서 누구보다 대규모 관료조직의 속성을 잘 이해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브릭스(BRICs) 장밋빛 낙관론 너무 과장

윤정호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은 비단 유엔뿐이 아닐 것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각기 다양한 도전에 처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교수님께서는 1993년, 세계 각국이 21세기에 직면해야 할 도전을 다룬 <21세기를 준비하며(Preparing for the 21st Century)>라는 책을 내놓으신 바 있습니다.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만 새롭게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라도 있으신지요?

폴 케네디<강대국의 흥망>과 관련해서는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만 <21세기를 준비하며>에 대해 그런 질문을 받다니 놀랍군요.(웃음) 크게 덧붙여야 할 것은 없는 듯합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금융시장의 격변,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 등 전 세계가 공통으로 직면할 도전을 기술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우리가 21세기에 직면할 도전들이 비단 군사적 위협과 같은 전통적인 국가적 도전(state challenge)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환경문제와 같이 비(非)국가적 위협과 도전(non-state challenge)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한 제 주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각각의 나라가 어떻게 21세기에 대비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다뤘습니다만, 여기에서도 특별히 덧붙일 내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럽에 대해 저는 통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지만 그 같은 노력이 쉽게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시사했고, 이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중국에 관해서는 “놀라운 성장을 계속할 것이지만 엄청난 사회·환경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잘못하면 이들 문제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역시 아직 유효하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면 외국인이 일본사회를 가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일본은 전후 30여 년 동안은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1990년대에는 극심한 정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윤정호일본의 경제난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일본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믿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랬기에 혹시 오늘날 우리가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들과 관련해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유수의 경제 분석기관을 포함해 많은 이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장래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쏟아놓고 있지만 지나치게 낙관적 견해는 아닌지 하는 생각입니다.

‘국력=군사력’ 아니다

폴 케네디 제 견해도 같습니다. 현재 브릭스와 관련해 장밋빛 전망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례로 골드먼 삭스(Goldman Sachs)는 경기순환을 고려하더라도 브릭스 국가들이 50년 동안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브릭스 국가들은 한결같이 거대한 인구를 지닌 나라들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그 정도로 오랜 기간 초고속 성장을 계속했던 사례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경제외적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15억 명의 인구를 갖게 될 인도의 경우 경제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면 인도 국민은 오늘날보다 수십 배나 많은 소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앙에 가까운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빈부격차가 큰 브라질의 경우는 사회문제가 걱정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의료 서비스 미비와 이민 등으로 지금도 한 해에 수십만 명의 국민을 잃고 있는 러시아가 과연 정상적으로 경제 발전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윤정호책에서 심도 있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대단히 심각한 비국가적 도전 중 하나로는 단연 테러리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테러에 대해서는 판이한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과연 로버트 카플런(Robert Kaplan)이 <천국과 힘(paradise and power)>에서 언급한 바 있는 넘기 힘든 인식의 차이가 대서양 사이에 있기 때문일까요?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많은 수의 미국인은 테러의 위협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유럽인은 미국이 위협을 지나치게 과장한다고 보는 듯합니다. 유럽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그 후 미국에서 오랜 기간 교편을 잡으신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폴 케네디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테러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많은 수의 유럽인은 회교 원리주의자들의 위협을 무정부주의자들의 위협과 같이 취급합니다. ‘100% 막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과거 유럽인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검거가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라고 불리는 런던 경찰국의 가장 중요한 임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10년대를 전후해 무정부주의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바 있습니다.

이렇듯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저는 유럽인들이 회교 급진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듯합니다. 영국의 대외정보국인 MI6이 영국 국내에서만 19개의 테러 음모를 찾아내고, 독일·프랑스도 계속 테러 계획을 적발해 내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사실 대규모 테러가 난다면 미국의 어떤 도시보다 프랑스의 마르세유나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지리적으로도 중동지역과 가깝고 과격파 회교도가 훨씬 많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면서 거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폴 케네디 교수의 이야기는 느리지만 심도 있게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비서가 거실로 걸어나왔다. 다음 약속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교수가 양해를 구했다. 최근 들어 부쩍 바빠졌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질문의 주제를 바꿀 때가 된 듯했다.

윤정호교수님께서 이렇게 바쁘신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미국사회에서 다시 일고 있는 교수님의 저서인 <강대국의 흥망>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교수님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 시작했는데요.

폴 케네디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도 책과 관련해 장시간 인터뷰했으니까요. 출판사 쪽에서는 싱글벙글합니다. 논란이 커질수록 판매 부수도 올라간다나요. 다시 적어도 5,000권은 더 찍어야겠다고 신나 하더군요.(웃음)

윤정호사실 논란은 미국의 쇠락을 예언한 책이 출판되자마자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하버드대의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는 아예 <선도할 운명(bound to lead)>이라는 책을 써 교수님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미국의 국력은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논리였지요. <강대국의 흥망>과 관련한 논란이 한층 더 증폭된 데는 교수님께서 2002년 2월1일 <파이낸셜타임스>지에 기고하신 글도 한몫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미국을 강대국보다 더 강한 ‘극초강대국(極超强大國·hyper power)’이라고 부르셔서 쇠락론과 관련된 기존의 입장을 바꾸신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저희 독자 중에서도 과연 교수님의 견해가 어떤 것인지 혼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을 듯합니다.

폴 케네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기사에 대해서는 제가 좀 할 말이 많습니다.(웃음) 기사에 제목을 다는 것은 편집장의 고유 권한입니다만, 기사 제목을 떡하니 ‘The Eagle has Landed’라고 달아놓으니 마치 제가 미국의 국운이 다시 상승하는 것처럼 말한 모양새가 돼버렸습니다.

저라면 기사의 제목을 다르게 달았을 것입니다. 글은 미국의 군사력에 초점을 맞춰 썼지만, 국력을 측정하는 데는 다양한 기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 미국의 쇠락 속도 늦출 기회 상실

분명 2002년 당시 미국의 국력을 군사력 측면에서만 보자면 엄청난 국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국력은 군사력 하나만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력만 놓고 보자면 2차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8월15일 현재 영국의 국력은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났어야 합니다.

1630년 현재, 스페인의 국력은 최정상급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1945년의 영국이나 1630년의 스페인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기울고 있었습니다.

윤정호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여전히 미국의 국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신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폴 케네디 그렇습니다. 나이 교수가 국력을 측정하는 데 즐겨 쓰는 ‘3중의 체스판(Three Layer Chess)’이라는 비유를 인용해 미국의 국력을 살펴보죠. 조지프 나이 교수는 한 나라의 국력은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소프트 파워’의 3중 구조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이 관점에 따르자면 미국은 군사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강대국이지만 경제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인도가 미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 영역에서는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국가가 더 이상 미국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미국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것입니다.

제가 지난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보고 느낀 바로는 남미에서조차 부시 행정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듯 보였습니다. 과거 미국이 가장 중시했던 지역인 중남미 국가들이 더 이상 미국을 신경 쓰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걷고자 하는 것입니다.

윤정호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제 공식 발표된 이라크스터디그룹(Iraq Study Group)의 보고서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보고서를 미국 국력의 쇠락이라는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폴 케네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사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워싱턴 정계에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내용이 부시 행정부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지요.

스터디그룹에는 민주당 지지자들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현 정부에 큰 타격을 주는 주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라크정책에 크게 비판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실패라고 선언했습니다. 부시도 이를 인정하는 듯 보입니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바 있는 네오콘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에게 정기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번 전쟁은 부시 행정부가 제가 책에서 언급한 바 있는, 모든 강대국이 겪게 마련인 ‘국력의 상대적 쇠락(relative decline)’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90년대에 미국은 쇠락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국방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을 추월할 것처럼 보였던 일본의 경제적 위협이 사그러들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각종 신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클린턴 행정부 시기 미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뒤를 이어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이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윤정호국력의 상대적 쇠락을 언급하셨습니다만, 이 같은 현상을 미국에 앞서서 경험한 것이 교수님의 모국인 영국입니다. 아울러 영국은 현재 미군이 싸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취한 경험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파견한 바 있고, 20세기 초에는 이라크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조언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만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제도 주미 영국대사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미국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에게 너무 훈계조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해럴드 맥밀런(Harold Macmillan) 총리의 “미국이 로마가 되면 영국은 그리스가 될 것”이라는 유의 태도, 즉 ‘영국은 국력은 약할지언정 지혜를 줄 수 있다는 태도’ 또는 ‘우리가 먼저 경험해 봤으니 무엇이든 다 잘 알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태도는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 이해해야

사실 조금이라도 영국의 경험을 연구해 본다면 미국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32년까지 이라크를 통치하려다 결국 포기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험난한 지형과 부족장들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분권적 정치체제인 나라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값비싼 대가를 주고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영국뿐이 아닙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경우도 200년 동안 이라크를 지배하기 위해 시도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국력을 유지하고 키우는 것이 어렵기에 이른바 거대전략(Grand Strategy)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케네디 교수가 ‘예술’에 비유한 바 있는, ‘제도와 여론, 정책 목표에 대한 장애 요소 및 정책 수단에 대한 인식의 총합물(總合物)’인 거대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대화의 방향을 바꿔 보았다.

윤정호2007년 말 한국 국민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됩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만 대외정책 역시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현재 상당한 난관에 봉착해 있는 한·미 동맹이 선거 이슈의 하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 영·미 관계가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흔히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로 불릴 정도로 긴밀한 영·미 관계 역시 2006년으로 50주년을 맞은 수에즈 위기(Suez Crisis)의 경우가 보여주듯 큰 위기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폴 케네디 수에즈 위기는 영국에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위기를 통해 영국은 국력이 얼마나 쇠락했는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미국과의 관계가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행정부가 영국군의 철군을 요구하자 영국은 별수 없이 이를 즉각 수용해야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영국이 그토록 놀랄 이유는 없었다고 봅니다.

19세기 말의 불·러동맹(Franco-Russian Alliance) 등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류 역사를 통해 국가 사이의 관계는 동등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 사이의 관계인 적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제관계는 강대국과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런 경우 강대국은 약소국에 매우 특별한 나라가 되겠지만,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약소국은 강대국이 신경 써야 할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이 같은 사실이야말로 한·미 관계,

특히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를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유념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많은 동맹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만 배려할 수도, 한국에만 신경 쓸 수도 없습니다.

김정일이 오판해서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는 한국을 크게 중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현재 레임덕 현상에 빠져 있고 이라크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무관심’은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미국은 다른 동맹국가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미 관계에서 한국이 유념할 점 중 하나는 이 같은 무관심을 ‘미국이 한국을 무시한다’는 식의 자존심 문제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극민통합을 향한 대통령선거운동 펴야

윤정호한·미 관계 못지않게 한국이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한·중 관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을 제2의 빌헬름 독일(Wilhelm German)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영국과 해군 군비경쟁을 벌이고 결국 1차대전을 일으킨 빌헬름 황제의 독일처럼 지역 패권을 추구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영·독 적대관계의 근원(rise of the anglo-german antagonism: 1860~1914)>의 저자이고 <영국 해군력 절대 우위의 성쇠(rise and fall of british naval mastery)>를 통해 영국과 독일 간 건함(建艦) 경쟁을 고찰하신 바 있는 교수님께서는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폴 케네디 몇 가지 측면에서는 분명 중국과 빌헬름 왕조 시대의 독일 사이에는 유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빌헬름 제국 당시의 독일처럼 중국은 대단히 야심에 차 있고 유능한 리더십 아래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하는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 것도 독일과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해군대학이 발간하는 저널인 <해군대학리뷰(naval war college review)> 최신호가 밝히고 있듯 해군력 증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빌헬름 제국을 연상시킵니다.

강대국 대열 동참 노력 긴요한 시점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텍사스대 교수로 재직 중인 W. W. 로스토(W.W. Rostow)가 1988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거짓 비유를 하는 역사가들을 경계하라(Beware of the Historians Bearing False Analogy)’는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역사 분석에서 상이한 경우들을 비유(analogy)하는 데는 항상 위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이 빌헬름 제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여부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마치 베른하르트 폰 뷜로(Bernhard von Bulow) 총리가 당시 독일 국력의 신장을 빗대 “국력의 팽장은 말린다고 막을 수 없는, 거침없이 자라는 어린아이의 키와 같다”고 한 것처럼, 앞으로도 빠른 속도로 신장하리라는 것, 그리고 한국은 이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이겠지요.

저는 한국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이 ‘핀란드의 지혜’를 배울 것을 권고하고 싶습니다. 이웃한 초강대국 지도부의 마인드를 읽어내는 지혜를 쌓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냉전 기간 많은 이들은 핀란드를 조롱하고는 했습니다.

소련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핀란드의 역사를 달리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소련과 국경을 접한 핀란드는 미국보다 소련 지도부의 마인드를 훨씬 더 잘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소련의 침략을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윤정호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년 말에는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유권자들인 한국 국민과 선거에 나설 대통령 후보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폴 케네디 선거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정치가들에게는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분열을 조장하면 당선될지는 모르지만 국가 전체의 이익 차원에서 봤을 때는 이 같은 선거전략은 마이너스가 될 것입니다. 한국 국민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선거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을 많이 접한다고 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거는 그 속성상 한 나라의 업적보다 실패를, 장점보다 약점을 들추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쌓아왔습니다.

1955년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 수준의 국민소득을 올리던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2007년 말에 있을 선거가 이 같은 사실을 잊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윤정호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즐거운 성탄과 복된 새해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덕담을 나누며 인터뷰가 끝났다. 폴 케네디 교수는 과연 관록의 대학자다웠다. 사전에 질문 내용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거침없이 대답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외교사 및 전쟁사학자들이 그러하듯 ‘강대국 중심주의 학자’였다.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사관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강대국을 연구한 학자의 업적으로부터 강대국의 생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일은 미래의 폴 케네디가 우리를 연구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세계사를 이끌어 가는 강대국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케네디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미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여기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끼워질 것이다.

폴 케네디 누구인가?

“1983년부터 예일대에서 강의…해군사 권위자서 문명론자로 각광”

1945년에 태어난 케네디 교수는 뉴캐슬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J. 리처드슨 딜워스(J. Richardson Dilworth) 석좌교수로 있는 그가 예일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1983년.

이 외에도 그는 이스트앵글리아대(University of East Anglia) 교수, 프린스턴고등연구소(Institute of dvanced Study)·독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Alexander von Humboldt Foundation) 방문연구원(visiting fellow)으로 활약했다.

케네디 교수의 주요 저서로는 잘 알려진 <강대국의 흥망(rise and fall of great powers)>을 비롯해 20세기에 일어난 전략 환경 변화를 다룬 <전쟁에서 평화로(from war to peace)>, 인터뷰에서 소개한 <21세기를 준비하며(Preparing for the 21st Century)><영·독 적대관계의 근원(rise of the anglo-german antagonism: 1860~1914)><영국 해군력 절대 우위의 성쇠(rise and fall of british naval mastery)>, 그리고 2006년 출간돼 화제를 모은 유엔을 주제로 한 <인류의 의회(parliament of man)> 등이 있다.

다시 불붙는 ‘미국 쇠락 논쟁’

“집권 공화당에 대한 재평가 성격… 부국강병의 리더십 매진할 필요”

미국이 로마에 버금가는 제국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쇠락(衰落)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의 국운이 기우는 것 아니냐에 대한 찬반 양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학술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논쟁은 대외정책에 대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국력이 강하다면 더욱 이상주의적 대외정책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목표를 하향조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재고해야 한다. 일방주의는 사치일 뿐이다.

둘째,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20여 년 전 레이건 혁명이 가능했던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의 국력을 쇠락하게 한 책임이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행정부를 제외하고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했던 민주당에 있다는 주장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 중인 논쟁은 2000년 이래 의회와 행정부 권력을 독점해 온 집권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재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논쟁의 내용과 결론은 2008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논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미국의 쇠락은 국제관계에서 불투명성이 제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힘의 공백을 메우려 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부국강병에 매진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만난사람·윤정호 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 예일대 박사과정
사진·Jacklyn Greenberg(Jag Studio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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