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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 박철순 '그대는 불사조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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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프로야구의 '불사조' 박철순(51.OB 전 코치.사진)이 대장암으로 투병하고 있다. 자존심 세고 의지하기 싫어하는 탓에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홀로 외로움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는 1998년 OB 투수코치를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2003년부터 LCD 모니터의 도광판을 생산하는 ㈜모든테크와 스포츠브랜드 알룩스포츠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업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80년대 OB 선수들의 모임에는 꾸준히 참가해 온 그가 지난해부터 발길을 끊었다. 대장암이 발병한 시점이다.

박씨는 "지난달 수술을 받았다"면서 애써 밝은 소리로 말했다. 병세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기를 꺼렸다. 수술은 비교적 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단기간에 완치될 수 없는 병인 만큼 치료와 요양을 잘해야 한다.

OB 멤버들은 프로야구의 영웅이었던 그가 쓸쓸하게 투병하는 것을 눈물로 지켜보고 있다. 한 OB 멤버는 "박 선배가 지난해부터 전화를 받지 않더라. 어쩌다 통화가 되면 '나 괜찮다'며 웃는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전했다. 다른 멤버는 "최근에는 사업도 어려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도울 방법을 찾고 있는데 괜찮다는 말만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고난을 겪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분인 만큼 암과도 싸워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선수 시절 온갖 역경을 헤쳐나간 인물이다. 그래서 별명이 '불사조'다. 그는 80년 한국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프로야구 밀워키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해 트리플A까지 오른 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국내에 복귀, 22연승을 거두며 OB 우승을 이뤄낸 주인공이다. 원년 MVP도 차지했으나 이듬해부터 허리부상으로 마운드를 떠났다가 복귀하기를 반복했다. 88년에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지만 또다시 이를 극복하고 마운드에 섰다. 독한 약물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영웅의 모습에 모두 눈물을 흘렸다.

각종 최고령 기록을 세우고 96년 은퇴했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지금 싸우고 있는 대장암은 불사조에게 닥친 마지막 시련이다.

김식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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