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30. 무대 의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내가 의상을 담당했던 영화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1956)'에서 주인공인 조미령(左)과 김동원이 키스하는 장면.

둘째 동생 덕자가 무용을 하겠다고 해서 나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을 우리나라 최초의 발레단인 서울 발레단에 입단시켰다. 그곳의 단장인 한동인씨는 한국인 최초로 발레를 하신 분이다.

우연찮은 인연으로 나는 발레 공연 의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공연작은 '인어공주'. 당시 여자용 발레 의상을 '쭈쭈'라고 불렀는데, 겹겹이 망사로 치마를 만들고 끝단을 경사지게 잘라내 완성했다. 만들고 나니 꽤 그럴싸한 발레복이 되었다.

그 일을 한창하고 있는데 이 소문을 들었는지 연극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 왔다. '간디'의 일생을 연극 무대에 올린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나나 그들이나 인도의 전통 의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일단 최선을 다 해보겠노라고 그들과 약속했다.

그리고는 유엔 인도 대표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분은 낯선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전통 의상도 한 벌 빌려 주셨다. 인도 의상이란 옷감을 허리에 두르고 옆 선 부분을 여러 번 접어서 남은 여유 분으로 머리까지 싸서 두르는 형태다. 간단한 이치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모르면 여간해서 모양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연극 '간디'를 인연으로 고인이 된 이해랑씨와 김동원씨, 그리고 이향씨 등 훗날 우리나라 연극과 영화계를 짊어지신 분들의 무대 의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간디'의 막이 오르던 날 날벼락이 닥쳐왔다. 이른 새벽, 극단 단장이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 "노 선생, 큰일났소! 시나리오가 검열에 걸려 반 토막이 나버렸지 뭐요. 쇼라도 해서 30분을 때워야겠으니 긴급히 무용복을 만들어 주셔야 겠소!"

무용수는 10명 쯤 되고 공연 시간은 정오였다. 5시간 안에 의상 10벌이라니,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생각했다. "무슨 무용을 하는데요?"하고 물었다.

"'룸바' 춤이요." 그 대답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부랴부랴 극장으로 가보니 10명의 무용수들이 벌써부터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극장 앞 옷감 집에서 열 가지 색 새틴 안감을 다섯 마씩 끊어서 끌어안고는 극장으로 다시 돌아 왔다. 옷감 가게에서 빌려온 가위로 옷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치마는 옆으로 묶고 상의 부분은 등 뒤로 묶고 앞은 가는 끈으로 잘라서 목에 걸도록 했다. 그만하면 훌륭한 룸바 의상이었다.

연극 파트도 바빠졌다. 인도 의상을 입어야 할 이해랑씨가 기다리고 있고 주연급의 이향씨는 내가 할리우드에서 사온 속눈썹을 달아 달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막이 올랐다. 신나는 룸바 리듬이 흐르면서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조명을 받은 새틴 옷감이 번쩍거리며 각 색이 물결친다. 무용수가 움직일 때마다 타이트한 치마 옆으로 다리의 곡선이 슬쩍 슬쩍 엿보인다. 이 때가 1950년 대다. 모든 관중은 이 섹시한 장면에 흥분되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연극 '간디'공연은 위기를 모면하고 예상 외의 흥행성과까지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흥행은 6.25가 발발하면서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노라 ·노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