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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만으로 직업병 처리/사망 원진근로자 보상금 지급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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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판정」전에도 「소견」따라 요양가능/직업병 보상의 중요한 선례될 듯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사망자 김봉환씨에 대한 직업병 인정 및 보상문제 등이 19일 합의됨으로써 원진레이온 사태는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날 합의된 내용은 직업병 피해근로자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요구사항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앞으로 다른 사업장에서 이와 비슷한 직업병 문제가 발생했을때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합의된 내용 가운데 핵심은 고 김씨에 대한 직업병 인정 및 보상문제부분.
대책위와 회사측은 「김씨는 직업병의 개연성이 충분하며 회사측에서 산재요양 신청을 했을 경우 치료와 검진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국회 노동위 실태조사 소위원회의 보고서 (5월6일) 내용에 따라 장해 7등급 산재 보상금 5천8백50만원과 장비 1천만원을 미리 받고 차후 직업병 판정이 내려지면 민사배상금 4천1백50만원을 추가로 지급받기로 합의했다.
이는 직업병 판정이 내려져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현행법규와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앞으로 직업병 판정·보상마찰이 있을 경우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직업병 관련 제도개선과 작업환경 측정 및 점검에 관한 합의사항은 노동부가 그동안 제시해온 「원진레이온 사태 종합 해결대책」과 합치되는 것으로 제대로 시행만 되면 직업병 예방 및 효과적 대처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합의내용 가운데 「현직근로자중 자각증상 호소자 및 특수검진 1차경과 이상소견자의 경우는 물론이고 퇴직후 발병자의 경우에도 의사의 이황화탄소 중독 의중소견(의심이 간다는 견해)만 있으면 직업병 최종판정이 있기전이라도 우선 치료와 검진을 실시한다」는 조항은 지금까지는 직업병 인정기준과 절차가 까다롭고 측정방법도 복잡해 직업병 판정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고 뒤늦게 판정을 받는다해도 이미 병이 치명적이 되어버리는 수가 많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노조가 지정하는 전문가의 참여아래 보호장비에 대한 성능시험을 실시하고 실험결과에 따른 보완대책을 실시한다는 내용과 노조추천 강사가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분기별로 3시간 이상 갖는다는 조항은 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며 회사측이 가장 기본적인 방지대책조차 등한히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직업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또 「노동부의 특별작업 환경측정 및 점검은 노조가 지정하는 전문가가 점검반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실시하되 배기장치의 가동상태와 청소상태가 평상시와 똑같은 조건에서 실시한다」는 조항은 노동부의 환경측정이 유명무실하다는 그간의 비난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특수검진 결과 작업전환조치를 할때는 본인의 의견을 참작해 임금결손이 없도록 하자는 내용은 일부 기업주들이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을 임금이 훨씬 싼 부서로 이동시키겠다고 위협,사실상 강제로 일을 계속하게 해온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진레이온의 경우 이황화탄소 중독자와 사망자가 빈발하면서 여론의 집중비난을 받고 뒤늦게 국회조사단까지 파견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방지대책이 마련됐지만 다른 직업병 발생가능 사업장들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일제 점검을 실시하는등 적극적인 사전예방에 힘써야만 제2의 원진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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