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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연설문 쓰는 백악관 7인/서툰 화법 부각 시킨다(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공식 만찬사도 농담으로 시작/소규모 집회에 알맞는 부시다움 강조/변호사·기자출신등으로 미혼이 6명
미 백악관에서 남모르게 부시 대통령을 돕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을 대신 써주고 있는 스피치라이터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7명의 스피치라이터를 두고 있다.
모두 백인이며 홍보담당보좌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자가 5명,여자가 2명으로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혼.
경력도 다양하다. 텔리비전기자·변호사 출신도 있고 커트 스미스의 경우 영국 국적에 야구중계방송에 관한 책의 저자이다.
이들이 대통령의 연설원고를 작성하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고있는 것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보다 부시다운 연설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수사학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되려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능한한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어투,말하는 습관을 모방하려 합니다.』
이들 스피치라이터들은 공식만찬사라할지라도 양배추에 관한 악의없는 농담으로 시작하고 문장의 첫머리에 와야하는 인칭대명사를 빼먹으며 문장구조상으로는 약간 엉망인 화법이 부시의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레이건 대통령이 대중앞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스타일이라면 부시 대통령은 소규모 집회에서 더 어울리는 화법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한 부시 다워야 한다는 원칙아래에서도 촌철살인의표현력이 더 좋을 것만은 분명하다.
스피치라이터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부시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대중속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던 예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다.
지난 88년 대통령선거유세에서 쓰였던 미국판 『믿어주세요』인 『내입술을 지켜보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Iips,No new taxes)와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표현한 『자유롭고 완전한 유럽』(A Europe whole and free) 등이 그것이다.
스피치라이터들을 상대로 백악관이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을 시키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책임집필자는 영국 연극계의 귀재인 29세의 케네스 브래나가 지난해 제작,화제를 모은 「헨리5세」라는 비디오를 보도록 권유하고 있는 정도.
물론 대통령이 공식발표하기 전에 새로운 정책에 대해 떠벌이지 않도록 엄명을 받고 있는 것은 만국공통일 것이다.
대통령의 전문 스피치라이터가 백악관에 등장한 것은 1920년대 주슨 웰리버가 처음이었다.
웰리버의 월급은 당시 백악관 자동차수리소의 예산에 편성돼 있었다. 스피치라이터의 대접이 어떠했을까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전직 스피치라이터들은 바로 이 주슨 웰리버의 이름을 딴 비공식 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유력신문의 저명칼럼니스트와 정치부기자·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스피치라이터에게도 애환은 있다. 많지 않은 월급에 노동시간은 길고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명예도 없을 뿐더러 역사의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보람과 기쁨을 갖는다면 『존경하는 대통령의 곁에서 나라의 장래를 위해 조금의 기여라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9년 동구순방에 나선 부시 대통령은 폭우가 쏟아지는 광장에서 어느 시장의 지루하고 뒤죽박죽인 환영연설이 30분간이나 계속된뒤 연단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연설원고를 하늘높이 쳐들어 찢어버렸다. 청중들은 열광했지만 이 연설원고를 밤새워 써야했던 커트 스미스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커트군 부다페스트에는 비가 내리고 있군. 원고를 날려보내겠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돌아오자마자 원고를 찢던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위에 이처럼 적어 원고작성자에게 보내주었다.
스피치 라이터의 애환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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