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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비용만 1000억원 든다는 개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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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특히 개헌 논란으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사태를 관망하면서 투자를 유보할 가능성이 크고, 산적한 경제현안들도 정치권의 갈등에 파묻혀 처리할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치권이 힘을 합쳐 경제 회생에 몰두해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 판에 정치 이슈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경제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 어려움 가중 우려=한국외국어대 임기영(국제통상학과) 교수는 10일 "환율 급락과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출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이 급격히 불리해지고 있다"며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갑작스러운 개헌 논란으로 불확실성이 더 커지면 경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므로 논의 자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양대 나성린(경제학) 교수는 "대통령 연임제의 효율성에는 누구나 찬성하겠지만 불리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제안이라는 게 문제"라며 "정략적 이용을 반대하는 쪽과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갈등을 벌이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정부 권력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투자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며 "개헌 논란은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 논란은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18.55포인트 하락한 데 대해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수급 공백과 경기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개헌 논란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불안심리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언제 하더라도 해야 하는 개헌이라면 경제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안 마무리에 몰두해야=경제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잔여 임기 동안 전력을 다해도 해결하기 힘든 과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치 담당)은 "소비가 위축되는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시점에 정치권의 관심이 개헌 논란에 쏠리면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한 경제 현안의 해결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논란이 장기화할수록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커진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그룹장은 "대선이 있는 해인 만큼 정치 이슈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지만 경제 회생을 위한 정책 모색이 실종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기 회복, 부동산 시장 안정, 연금 개혁 등 더 미뤄두기 힘든 민생.국정 과제가 정치적 논란에 파묻힐 게 걱정된다는 얘기다.

김영종 비자코리아 사장은 "우리나라 대통령직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 제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비전, 운영의 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경제 혼란 부추기는 정치논리=경제 전문가들은 정략적 계산에 따라 일그러지고 있는 경제정책이 한둘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부동산 문제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전.월세 인상률 5% 제한 등을 제안해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법무부까지 시장 원리와 헌법질서에 역행한다며 반대하는 정책들이다.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따른 열린우리당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국회가 올해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지역구에 선심 쓰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늘린 것도 정치적 낭비 사례로 꼽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일부 시장개방 반대주의자들의 압력에 밀려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각종 연금개혁의 국회 통과가 어려움을 겪는 것도 정치권의 표 계산 때문이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안에 연금개혁을 하고 싶지만 정치적 관계 등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국민투표 비용은=기획예산처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데 900억~1000억원 가량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예산처 반장식 재정운용실장은 10일 "선관위는 국민투표 비용으로 900억~1000억원 정도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며 "그러나 부수비용을 어느 정도 범위로 정할지 등에 따라 필요 예산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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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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