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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실 벗어난 『초연』갈구|독자층 파고드는 명상서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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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9면

라즈니쉬의 명상집『배꼽』이 수개월 전부터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성자가 된 청소부』등이 롱 셀러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있다.
이같은 경향에 편승해 비슷한 유의 명상서적과 정치한 논리가 빠진 인생론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들 명상서적과 인생론들이 범람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말(언어)의 원천적인 힘은 아득한 때부터 주력(주력)으로 기능해 왔다. 말은 사태를 빚을 뿐만 아니라 온갖 실재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였다. 말은 사물의 인식을 전달했고 발언은 축복이기도, 저주이기도 하였다. 말대로 세상은 흘러갔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살펴보면 말은 그 당해 공동체나, 당대의 존재의미나 존재의 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시대나 그 사회의 말을 통해 그 정황을 진단하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 가는 일정한 책들이 있다. 대체로 명상적이고, 도사(도사)적인 경험이 담긴 책들이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흐름에 노장적인 유의 책들이 보태지고 있다.
이러한 책들은 분석적이고 정치한 논리로 삶의 직접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고 아울러 구체적인 규범적 행동까지를 요청하는, 이른바 사회 과학류의 책들이 잘 팔리는 현상과 아울러 묘한 극의 대칭을 이루면서 독서 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현상들, 특히 어쩌면 반시대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을 명상이나 도사류의 책 읽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들이 담고 있을 주술적 힘의 영향이 어떤 형태로도 삶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을 통해 사회나 문화의 잠재적 의식은 노정 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러한 유의 책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있는 것인지 먼저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때 발견되는 것은 그 내용들이 한결같이 삶의 구체적 현실들을「초연」한 입장에서 극복하거나, 그러한 입장의 그윽한 미소 속에서 용해해 버리는 총체적 완전성의 진술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는 것은 이를 데 없이 바람직한 것이다. 삶은 그렇게 완성되어야하고, 그럴 때 비로소 삶의 온갖 질고가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책들이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전개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에 하나의 근원적인「균형 잡기」의 틀로 기능 하면서 우리가 상실한 어떤 것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허(허)를 절감하는 어떤 갈등의 징표라고 이 현상을 이해하면서 그것이 사회의 건강함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고 끝날 수 없는 불안이 그 속에 잠재되어 있음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유의 책들의 내용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삶의 현실성에서 비롯하는 온갖 아픔에 대한 몸부림치는 고뇌가 담겨있지 않다고 하는 사실인데, 바로 그것이 불안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 책의 내용이 고뇌의 과정을 모두 겪어낸 궁극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어서 궂이 그 과정을 담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탈락된 채 종국적인 발언만이 그대로 전달되는 읽힘의 현장에서는 그 결과만이 당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초연만을 지향하는 비현실적 의식을 부추기게 된다. 삶을 직면하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간과하거나, 회피하거나, 도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현실적 초연을 스스로 안전에의 지향이라는 구실로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실은 자기 기만을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보다 중요 한 것은 왜 이러한 책이 읽혀지느냐 하는 사실이다. 그것이 하나의 문화현상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을 표출한 저변에는 틀림없이 그러한 책들에의 지향을 충동한 집단적인 무의식이 잠재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한 동기는 그러한 책들의 내용에서 어떤 해답을 기대했거나 또는 충족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상황적인 한계에서 표출된「구원에의 갈구」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유의 책의 범람은 하나의「종교현상」이 되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기존의 모든 종교, 혹은 의미의 담지자로서의 기존의 모든 사회안 의 의미체계가 몰락했음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책들의 범람현상에서 우리가 지녀야할 태도는 그러한 귀한 책들이 환상을 양산하거나 불가능한 구원의 실현을 담지하는 그릇된 왜곡을 생산하는 것이 되지 않게 오늘의 사회정황, 문화적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문화적 감성을 지니는 일이다. <정진홍><서울대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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