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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춤추는 정책 버티는 업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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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은 없을까-. 최근 몇 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수돗물파동으로 시민들의 식수불신이 증폭되면서 「비교적 믿을 수 있는 물」로 인식된 생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현재 법적으로는 생수 내국인 시판이 금지되고 있는 상태다. 날로 소비가 늘어나는 생수를 놓고 10년이 넘도록 시판 양성화 논의가 갈팡질팡 계속되고 있을 뿐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수, 무엇이 문제이고, 그 대책은 없는지 점검해 본다.
◇현황=75년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보존음료수」제조업이 신설된 뒤 76년 1월 다이아몬드생수가 첫선을 보인데 이어 88년 2월 설악 음료에 이르기까지 14개 업체가 생수제조·판매허가를 받았다.
76년 첫 허가 당시엔 전량수출을 허가조건으로 했으나 84년엔 전량수출 또는 주한외국인 판매로 변경됐고 87년 7월 이후엔 또다시 전량 수출로 허가조건이 바뀌었다.
생수 제조업에 대한 이 같은 허가 조건은 「보사부장관, 시·도지사는 영업허가 또는 품목제조허가를 할 때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는 식품위생법 22조3항에 따른 것이다.
80년대 초까지 일부 특수층에만 공급되던 생수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공해 및 상수도 오염문제가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소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87년 37억원(3만2천t)정도에 불과하던 생수시장 규모는 88년 57억원(5만1천t), 89년 1백50억원(10만6천t)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3백억원(14만t)으로 소비가 급증했다.
특히 생수 생산량 중 수출은 미미한 상태로 95% 이상이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다.
◇문제점=내국인 시판을 금지한 「허가조건 위반」이란 이유로 매년 단속과 행정처분이 되풀이되어 왔다.
87년 9개 위반업소에 3천4백80만원이 부과됐던 과징금은 89년 11개 업소 4천9백35만원으로, 지난해엔 22개 업소(중복위반 포함) 2억1천1백만원으로 늘었다. 특히 1년 이내 4회 적발된 설악 음료는 처음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생수 내국인 시판을 놓고 단속과 행정처분이 되풀이된 것은 업체들이 생수 시판 양성화에 대비, 과징금을 물더라도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 큰 문제는 허가업체의 생수 수질이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행 법규상 「지하암반을 뚫고 나오거나 굴착 채수한 물을 음용에 적합하도록 정수 처리한 것」으로 규정된 생수는 약간의 시설기준만 정해놓고 있을 뿐 수질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이 없이 음용수 수질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88년에 4개 업소, 89년 11개 업소, 지난해엔 8개 업소의 생수가 일반세균(㎖당 1백마리 이하) 초과, 불소(1PPM) 초과, 수소이온 농도 부적합 등으로 적발됐고 지난달에도 두 업소가 일반세균 초과로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았다.
특히 유통 중 오염으로 일반세균이 기준치의 4·6∼80배까지 늘고 일부 생수에서는 약품소독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잔류염소까지 검출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생수에 대한 수질 규제가 미흡한 상태에서 과연 비싼 값을 치르고 생수를 마셔야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낳고 있다. 더구나 생수시판가격은 18·9ℓ까리 대형용기 한통에 4천원으로 ℓ당 1백82원 하는 경유보다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수돗물 값에 비해서는 2천배 가까이 비싸 과연 적정한 값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허가생수 범람=생수 시판에 대한 당국의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무허가 생수업자들까지 주택가와 아파트 등에 파고들어 「봉이 김선달」식 물장사로 재미를 보고 있다.
무허가업체는 교인들을 상대로 하는 회원제업체 30여곳을 비롯, 탄산음료 허가를 받아 생수를 제조·판매하는 업소와 소규모 약수배달업소 등 전국에 2백여곳이 영업중인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계곡 물이나 지하수·샘물·약수 등을 물통에 담아 팔고 있는 이들 무허가 업체의 생수는 수질상태 뿐만 아니라 취수·포장·유통에서 위생관리가 거의 안돼 건강에 오히려 위험을 줄 가능성이 높다.
◇양성화 대책=지난해 생수 내국인 시판으로 행정처분을 당한 업체들이 잇따라 행정소송으로 대응해오자 보사부는 생수 내국인 시판에 대한 허가조건 위반 단속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판단, 양성화 대책을 검토해왔다.
수도물에 대한 불신으로 생수 소비가 사실상 일반화돼 당초의 허가조건 제한의 명분이었던 생수시판으로 인한 계층간의 위화감이 상당히 해소된 이상 생수시판 허용과 함께 강력한 품질관리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생수에 대한 시설 및 수질기준 등을 따로 정하고 위생감시를 강화, 수돗물과는 「뭔가 다른」 물로 공급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사부는 그 첫 단계로 식품위생법 시행령을 고쳐 보존 음료수 명칭을 「광천음료수」로 개칭, 현재 「음용수」개념으로 소비되는 생수를 미네럴 성분이 함유된 「음료수」로 바꾸는 한편 현재 유통중인 18·9ℓ짜리 대형용기를 없애고 2ℓ미만의 소형 용기만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 참여 움직임=생수시판이 허용될 경우 내수시장만도 1천여억원 규모.
이 때문에 삼양식품·제일제당·롯데칠성음료·해태음료·오뚜기식품·크라운제과 등 10여개사가 생수시장 참여를 추진하고 있으며 유한양행·동아제약·일동제약 등 제약업체들도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삼양식품은 강원도 대관령에 이미 생수생산 설비를 완공, 시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롯데칠성음료도 제조설비를 갖추고 올 하반기 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망=외국의 경우 생수시판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에비앙」 등 세계적인 생수를 생산하고 있는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경우 원수에서부터 임상학적·약리학적 검사를 하고 칼슘·마그네슘·인 등 7∼8종의 미네럴이 함유되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제조 즉시 제품의 일반세균 검출기준을 ㎖당 20마리로 정해 시판을 허용하고 있다.
지하수의 수질이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우리 나라에서도 이를 적극 개발해 자원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높고 이 같은 측면에서 언제까지나 생수시판을 금지할 수만은 없을 전망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생수소비가 일반화되어 있으면서도 수질상태를 믿지 못하고 무허가 업체가 판을 치는 행정 부재의 상태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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