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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줄서기' 뒷사람 보며 참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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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기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기 시작한 지 30분이 흘렀다. 그 사이 앞 줄은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다. 이대로 포기하고 그냥 가버려야 하나, 아니면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냥 있어야 하나.

홍콩과학기술대 주롱롱 경제학과 교수팀은 위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하며, 그렇게 결정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미 '소비심리'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주교수는 은행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연구 힌트를 얻게 됐다. 앞줄에 사람이 얼마나 남았나를 봐야 언제 자기 차례가 오는 지를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속 뒤를 힐끗힐끗 보더라는 것이다.

주교수와 딜립 소만 교수는 제일 먼저 현금인출기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실험대상 앞에 줄 선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뒤에 선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거나 줄였다. 그 결과 실험대상의 뒤에 사람들이 많이 기다릴수록 줄서기를 포기할 확률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볼일을 보고 난 뒤 다시 줄을 섰을 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연구팀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또한번 실험을 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우체국에서 줄을 선다고 가정하라고 한 뒤, 한번 줄을 떠나면 다시 줄을 설 수 없게 규칙을 정했다.

자기 앞에 선 사람의 숫자와 뒤에 선 사람의 숫자를 들려준 뒤 그대로 현 위치에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소정의 '급행료'를 내고 앞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뒤에 줄 선 사람들이 많은 학생들은 현 위치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반면, 별로 없었던 학생들은 급행료를 내고서라도 앞으로 옮기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주교수와 딜립 소만 교수는 다시 줄을 서러 돌아올 때를 대비해 뒤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뒤를 돌아보는 것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며 위안을 얻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국 킹스턴대 로버트 이스트 교수팀은 줄서는 환경이 열악하면 열악할수록 불평불만이 줄어든다는 역설적인 연구결과를 알아냈다. "소란을 피울수록 줄이 더 늦게 짧아지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꾹 참는 것"이라고 이스트 교수는 설명한다.

이에 반해 경기를 보거나, 개봉 첫날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기 위해 '자기선택'으로 늘어선 줄에는 다른 심리가 작용한다고 한다. 이스트 교수는 "이 경우엔 줄 서는 것 자체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줄서기가 자신의 취미와 열정이 드러나는 축제의 일환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함께 줄 서 있는 사람들과 동지애를 공유하기도 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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