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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대동아공영권」경계/가이후 일 총리 동남아순방의 속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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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역 역할증대 적극 모색/경제원조 미끼 영향력 확대노려
일본이 동아시아등에서의 지역적 역할증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은 걸프해 기뢰제거를 위한 소해정 파견형식으로 전후 최초로 자위대 병력을 해외에 파병했고 같은 시기에 가이후(해부)총리가 동남아 5개국 순방(4월27일∼5월6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이후총리는 5일 필리핀을 방문,수빅만의 미군기지에 기항하는 자위대 소해정선단을 격려하는 행사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일본 정부의 한 소식통은 걸프해로 항진중인 소해정선단 6척이 수빅만기지에 도착하는 5일에 맞춰 마닐라를 방문하는 가이후총리가 헬리콥터를 이용,이곳에 날아가 격려행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과거역사에 대해 반성」하는 뜻을 순방국가 국민들에게 전하는 한편 개발원조(ODA)돈보따리를 풀어 이 지역의 대일본적대감을 불식시키려는 것이 가이후총리의 당초 순방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필리핀 수빅기지에서 일 자위대 소해정의 격려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으로 부상했음을 만천하에 알리자는 속셈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걸프전쟁이후 새롭게 편성되는 새세계질서에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을 끼워 넣으려는 움직임이 미·소등 강대국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일본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하려고 적극 나선 것은 「제2의 대동아공영권」구축을 꾀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가이후총리가 말레이시아방문시 마하티르수상이 제창한 「동아시아경제권구상」에 『싫지 않다』는 이해의 뜻을 나타낸 것이나 태국방문시 캄보디아문제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발휘해 대립되는 3파대표들과 회담,「유엔에 의한 무장해제검증」을 기본으로한 일본독자의 화평안을 제기함으로써 아시아지역분쟁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해 주목을 모았다.
「동아시아 경제권(EAEG)구상」은 유럽공동체(EC)나 북미자유무역권창설같은 구미지역 경제블록화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마하티르수상이 지난해 12월 제창했다. ASEAN·일본·한국·중국·대만·홍콩 등을 독자의 경제권으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구상이 『미국·캐나다등 태평양동안지역 국가들에 대항하는 새로운 경제블록화로 발전된다』고 크게 반발,일본·한국이 여기에 참가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일본도 그같은 경제블록이 자유무역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외면해왔었다.
따라서 가이후총리의 「이해표명」이 곧 일본의 「동아시아경제권」참여로 발전할지는 두고볼 문제지만 일본기업들이 다투어 현지공장을 설립하는등 「21세기의 전략거점」으로 동남아시장을 노리고 있는만큼 일본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호재」임에 틀림없다는게 이 지역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일본은 또 9월 하순에는 아키히토(명인) 일왕부부의 동남아시아순방을 추진할 계획으로 있어 이 지역공략을 상당히 치밀하게 추진하는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한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되는 조치로 일본정부는 지난 2월23일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 아난 새정권에 인권조항을 무시해가면서 정부개발원조(ODA)명목으로 약 8백억엔을 새로 지원키로하는 한편 필리핀에도 2천53억엔에 이르는 막대한 추가원조를 약속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일본총리로는 처음 브루나이를 방문한 가이후는 보르기아국왕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아시아에는 캄보디아문제나 남북한문제,북방영토등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일본외교의 기본방침을 『미일관계를 기축으로 하면서도 아시아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위해 공헌하고 싶다』고 말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행사 확대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가이후총리가 동남아시아 방문을 통해 흘리고 있는 발언을 모아보면 걸프전쟁이후 일본지도층이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제공헌책으로 뒤늦게 결단한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아시아권지역개입으로 확산되는게 아닌가하는 불안을 씻을 수 없게한다.
이와 관련,6월중 중간보고를 위해 일본의 장기외교정책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행정개혁추진심의회(제3차 행혁심)소속 일본원로들이 명치유신이래 일본지도층이 제창한 「탈아론」을 이제 「재아시아화」로 바꿔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도 꼭 군국주의 시대 「대동아공영권」을 외친 일본의 망령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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