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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14편 14색 '판타지 뷔페' 맛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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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번역자, 짧은 글의

긴 여운을 옮기다

사키 외 지음

주은의 외 옮김

엔북, 240쪽, 9000원

기획이 돋보이는 세계 단편소설 모음이다. 우선 수록 작품의 선정. 번역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번역하는 사람들'카페 회원들이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영미권은 물론 프랑스.독일.스페인.오스트리아와 일본. 중국의 작품 14편을 골라 주로 해당 언어를 전공한 젊은 번역자들이 이를 옮겼다. 당연히 중역(重譯)의 가능성은 배제된 셈이다.

이 덕분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부분 신선하다. 영국의 사키, 중국의 후예핀처럼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도 있고, FS 피츠제럴드나 기 드 모파상, 마크 트웨인 같이 귀에 익은 작가들이라도 낯선 작품을 들고 나온다. 수록작 대부분은 판타지 소설로 분류될 것들이다.

말을 배운 고양이가 티파티에 참석한 이들의 치부를 폭로하는 바람에 겉만 번지르르한 이들이 고양이 살해를 음모하는 '고양이 토버모리',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아이로 죽는 남자의 기이한 일생을 다룬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일생', 어눌한 마부와 그가 주워온 암캐와의 섬뜩한 인연을 그린 '코코트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런 면에서 부조리한 사회를 풍자한 마크 트웨인의 '에드와 조지 이야기'는 조금 색다르다. 고아인 에드워드 밀스와 조지 벤턴 두 사람은 갓난아기 적에 브랜트 부부에게 입양된다. 브랜트 부부는 "순수해라, 정직해라, 부지런해라, 남을 존중해라. 그러면 네 인생은 성공할 것이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평범한 이들이다. 이 가르침을 착실하게 지킨 에드워드는 자랄 때는 온순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성실한 모범시민으로 산다. 하지만 말썽꾼 조지는 범죄자에 알콜중독자가 된다. 그런데 이 둘에 대한 주위의 배려와 관심은 우리의 기대와는 영 다르다. 조지가 보호받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에드워드는….

특정한 문학적 경향을 엿보거나 할 수는 없고 저작권 논란을 피하기 위함인지 1950년 이전 작품만 담긴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문학애호가들을 위한 '문학적 뷔페'로는 수준급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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