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땅 맞교환' 외자유치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이 서로 땅을 맞바꾸는 '땅 스와핑'으로 자칫 무산될 뻔했던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성사시켰다.

일본 스미토모화학과 ㈜농심, 경기도는 지난 7일 경기도청에서 공장부지 교환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농심은 경기도 평택의 포승산업단지에 있는 공장부지 4만5천평을 단지 내 같은 면적의 경기도 소유 부지와 맞바꾼다.

스미토모는 농심의 소유였던 공장부지에 3년간 5억달러를 투자, 액정화면(TFT-LCD)용 첨단부품인 컬러필터와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공장을 내년 초 착공할 계획이다.

경기도의 끈질긴 설득에 농심이 대승적으로 양보해 1천명의 신규 고용과 연간 1조원의 매출이 기대되는 첨단 공장이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긴박했던 투자유치 과정=스미토모화학이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경기도가 입수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에, 삼성전자가 충남 아산에 각각 TFT-LCD 생산라인 설립을 발표해 부품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던 때였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투자유치단은 일본 도쿄(東京)의 스미토모화학 본사를 방문, "투자를 하면 포승단지 내 경기도 소유지를 공장부지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스미토모는 포승단지에 있는 자사의 한국 법인인 동우화인켐의 기존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하고 투자의향서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한달 뒤 문제가 발생했다. 스미토모는 경기도의 땅이 공장부지로는 적합치 않다고 판정내렸다. 제품 생산을 위해선 15만4천V의 고압전류가 필수적인데, 그런 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송전탑 등을 설치해 전력을 끌어오자면 주변 공장들에 일일이 양해를 얻고 필요한 토지와 허가를 새로 취득해야 했다. 비용은 둘째치고 시간적 여유가 우선 없었다.

동우화인켐 라인호 경영기획실장은 "새로 전력을 끌어오는 등 공사를 할 경우 LG필립스.삼성의 공장가동에 맞추기 힘들어 투자가 쓸모없게 될 수 있었다"며 "다른 지역에서 부지를 찾는 것도 어려워 자칫 투자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시가 급했던 스미토모는 동우화인켐 공장과 인접한 농심의 공장부지에 관심을 보였다. 농심의 땅은 송전시설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도와달라"며 농심 측에 'SOS'를 보냈다.

농심은 그 부지에 4천억~5천억원 규모의 라면생산용 첨단 무인공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난감해 하는 농심 측에 경기도는 땅 맞교환을 제시했다. 농심은 지난 6일 오후까지도 고심을 거듭했다. 7일 오전에야 마침내 기다리던 'OK'사인이 났다.

농심의 홍금일 전무는 "외국인 투자 유치가 급하고 대체 부지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신춘호 회장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며 "우리도 제조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제조업 공동화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어 국가경제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관협력의 모범사례=스미토모가 약속한 투자 규모는 올해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이뤄진 외국인 직접투자로는 LG필립스의 파주공장 투자에 이어 둘째 규모다. 지난 3분기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이뤄진 외국인 투자는 모두 합쳐 14억6천만달러였다.

스미토모도 3년간 투자가 완료되면 컬러필터.형광 필름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 조달해 온 해당 부품의 수입 대체 효과만도 연간 5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청 이재율 투자진흥관은 "제조업체들이 너도 나도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민관이 협력해 이 같은 대규모 첨단시설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수원=김상우.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