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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한국은 문화강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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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 사회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성장주의와 경쟁주의로 치달아 왔다. 살벌한 경쟁과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남은 자와 낙오된 자로 나누어졌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새해 인사가 바뀌었다. "부~자 되세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복'을 구하고 기원해 오던 민족이었다. 이젠 재물과 재화가 만복이 됐다.

웰빙, 그러니까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기업의 접대문화가 바뀌고 있다. 공연 티켓 등 문화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화상품을 구매하면 손비처리를 해주는 제도 차원에서의 배려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폭탄주를 돌리는 술접대 문화에 비하면 훨씬 웰빙한 접대 방법이 아닐까.

문화산업이란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한국 영화가 뜬다고 하지만 한국 게임산업은 세계 최강이다. 리니지가 벌어들인 돈은 한국 영화가 벌어들인 돈에 비해 천문학적인 숫자다. 외국 게이머들은 게임의 종주국인 한국 이름을 갖고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영예로 생각할 정도다. 한류 열풍으로 벌어들인 재화뿐만 아니라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이어 한국 유학 열풍이 한창이다. 문화와 산업이 만났을 때 문화는 행복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부모의 생일보다 연예인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고 나면 생산되는 새 상품처럼 스타는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다. 대중은 일상을 잊게 할 그 누군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란 열광하다 사라지고 소진되는 이미지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니다. 문화는 자신의 삶과 주변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정신이다. 삶에 대해 존재적 질문을 던져보고자 하는 의지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돌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자아를 돌보는 데 실패했다.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1월, 한 해를 시작하며 일기 쓰기를 권한다. 사이버공간이 대중적 여론을 수렴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지만 익명의 수많은 댓글은 또 다른 배설공간이 되기도 했다. 문자와 채팅언어가 우리를 짧고 순간적인 감정배설로 몰아갔다. 오랜 상념과 자기 고뇌의 시간을 빼앗아갔다. 일기 쓰기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나의 자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순신은 화급한 전쟁 상황에서 '난중일기'를 썼다. 남미 혁명전쟁 속에서 체 게바라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썼다. 세상과 부딪치고 돌아와 스스로에게 침잠하며 고이는 시간. 일기 쓰기는 반성과 성찰을 넘어 직관과 예지력을 되찾게 한다.

김구는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말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마음을 발달시키고 정신을 배양하는 것, 그것이 문화라고 말한다.

새해가 밝았다. 시간을 칼로 베어내 다시 '희망'을 주술처럼 중얼거려 본다. 시간이 공허하게 나를 관통하지 않게 나의 정서와 마음과 정신을 보듬자. 내 안의 진정한 감각과 예지력을 찾자. 문화의 힘이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나와 세상과 사물의 관계성을 들여다보며 의미와 기쁨과 용기를 찾아가는 어떤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힘, 이것이 문화의 힘이 아닐까.

◆약력:1964년 대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2년 '문학과사회' 문학평론 등단,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제15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 저서 '페넬로페의 옷감짜기-우리 시대 여성시인' 등

김용희 평택대 교수. 국문학

◆ 약력:1964년 대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2년 '문학과사회' 문학평론 등단,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제15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 저서 '페넬로페의 옷감짜기-우리 시대 여성시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