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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낙원”피지섬에 인종차별 한파(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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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주민위주 부·권력 분배/인도계 소수민족 큰 반발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으로 불리는 남서태평양의 피지섬에도 차가운 인종차별 바람이 불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백옥같은 백사장을 자랑하며 세계인들의 「꿈의 여행지」로 남아있던 피지공화국이 인종차별과 쿠데타,소수민족의 신음으로 얼룩진 「얼어붙은 섬」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피지의 이같은 새로운 불명예는 부와 권력을 분배하는 과정이 철저히 원주민위주로 진행되고 있어 인도계의 소수민족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표면화되고 있다.
인구 76만명,1인당 GNP 1천5백40달러의 피지공화국은 남서태평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고 발전된 국가로 알려져 왔다.
이런 피지섬이 「제2의 남아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난 70년부터다.
독립직후 동맹당(AP)을 이끌고 집권한 라투 마라 대통령은 최우선 정책사업으로 피지원주민들의 권익향상을 꼽았다.
따라서 인도계 피지인들은 1874년 피지가 영국에 병합된 직후부터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피지섬에 진출,이미 1백년이상 살아왔기 때문에 이에 강력히 반발하기 시작했다.
인도계 피지인들은 70년대 전후까지 피지 경제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었다.
피지 전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계 피지인들이 마라정부 정책에 격렬하게 저항,동맹당이 1987년 마침내 무너지고 다인종을 포함한 피지노동당과 인도계 피지인들이 결성한 국가연합당(NFP)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연립정부가 「왜곡된 분배구조」를 개선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순수 피지인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구실하에 시티베니라부카 중령이 이끄는 군부세력이 새정부 수립 1개월만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피지인에 의한 영속적 지배」를 다짐한 라부카 중령은 혁명 공약을 통해 『누구나 손님으로 피지에 살 수 있다. 다만 피지를 운영하는 주체는 피지인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라부카 중령은 헌법을 개정,피지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강령을 삽입했다.
피지원주민들은 이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인도계 피지인들의 원한은 쌓여만 갔다.
독립직후 정권을 잡았던 라투 마라가 역쿠데타에 성공,기존 라부카의 혁명정부와 연립정부를 수립했으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새 연립정부는 인도계 피지인들의 격렬한 저항운동에도 아랑곳 없이 1990년 7월25일 새헌법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헌법에 따르면 의회는 양원제로서 상원 34석,하원 70석으로 되어 있으나 하원의원의 37석,상원의원의 24석은 반드시 피지원주민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고법」으로 명명된 이 헌법 162조는 「피지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의회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100조에는 의회가 피지의 관습과 전통을 규정할 권한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21조2항에는 피지인들의 자질향상을 담당하는 정부기관과 일반교육 기관에는 특혜를 부여하도록 규정해 놓고있다.
이에 따라 좌절을 겪게된 인도계 피지인들은 하나둘씩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인근 호주나 뉴질랜드로 빠져나가고 있다.
공무원 진출,선거를 통한 정치적 승리,사업기회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기회를 제약당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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