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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대권」인가/김동수(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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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뒤통수라도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가진적이 있었다. 신문의 독자란에 투고한 한 시민의 짤막한 글줄이 가져다 준 부끄러움 때문이다.
『신문기사에 「대권정국」「대권을 위한 포석」 등의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권력에 찌든 용어들이다.
이는 「두려운 힘의 지배」를 바탕으로 하는 「마키아벨리식 논리」를 전제로 해 지도자는 절대자이니 모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도 좋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일상생활화」 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미 오염된 정치꾼들의 사고와 행태를 「확립된 전통」으로 밀고 나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기자들의 민주의식화가 화급한 과제일 것 같다.』
까놓고 말해 정치인이고 언론이고 권위주의의 의식화에 앞장서고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언론매체들이 무심코 사용하며 일반화 되다시피한 대권이란 어휘 한마디를 두고 이 신문독자는 우리들의 어정쩡한 의식 한자락을 들춰내고 있다. 말이란 것은 바로 자기의 사고와 가치관을 내보이는 수단이라는 것이 맞다면 그는 분명히 정곡을 찌르고 있다.
어째서 대권인가. 대통령의 권한을 줄인 약어도,정치권력의 막중한 책임을 강조하느라고 만들어낸 말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우리정치판의 낌새에 비추어 발가벗은 권력을 연상시켜줄 따름이다.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권모술수와 권력의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권위주의를 청산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것이 제도의 개혁이고,지금 우리는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다고들 일컫고 있다. 그런데 의식구조는 어떠냐는 물음을 이 평범한 신문독자는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는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는 말들을 우리는 언론매체에서 늘 접하고 있다.
후계자란 말을 예로 들어보자. 정치판에서는 다음 집권을 겨냥하는 인물이란 뜻으로 상용되고 있는 이 말도 민주적 경선의 참뜻에 미루어 보자면 어처구니없는 용어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 어디에서도 정색을 하고 그런말을 쓰는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왕조시대 절대권력자의 뜻에 따라 내리물림할때나 북녘 어느곳에서처럼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자는 데서나 걸맞는 말이다.
이처럼 언어가 함부로 쓰이고 있는 예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요직책을 임명할때나 국회의원 후보를 골라낼때는 낙점,무슨 일에 동의할때는 재가,기분이 언짢아 화를 낼 경우 대노 아니면 진노라는 말이 일쑤다. 모두 임금님께나 쓰던 말들이다.
그뿐인가. 고위층에 불려올라가 꾸중을 듣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명색이 보통사람의 시대에 이런 말들이 예사롭게 쓰이고 있다.
5·16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지칭해 고위층이란 별로 쓰이지 않던 말이다. 그 이후의 권위주의시절에 비공식적인 정보를 전할때 편의적으로 지레 겁을 먹고 우물대는 방편으로 쓰이던 말이다.
직접적인 표현을 못하고 은유적으로 밖에 쓸 수 없었던 그 시절에는 그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관행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의 의식구조가 옛날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별로 눈에 띄지않지만 대통령부인이 영부인이란 말을 독차지한 적도 있었다.
전통적인 예의범절에서 상대방을 높여부르는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관계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것이지 적어도 민이 주가 되는 시대를 표방하며 국민전체를 상대로 하는 언론매체에서 공용어로 쓰기에는 적합지 않은 말이다.
어느 사회건 시민의 사고형성,가치관,사회규범에서부터 정치의식 등은 모두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특히 언어가 정치에서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그 사회를 통제하는데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모든 행동을 통일시키는 도구가 될 뿐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통일하는 도구로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좀 더 나쁜 의미에서 말하자면 정치적 언어는 그 말을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계층의 이익에 맞도록 눈에 띄지않게 꾸준히 영향을 미쳐간다고 한다. 시민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의식화해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것은 정치학자·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오래되고도 항상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누가 사회와 정치를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다.
요즈음과 같은 대량정보 사회에서 그러한 언어를 집중적이고 광범하게 사용하는 집단이나 조직은 언론매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언론매체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얘기다.
원칙적인 정론,습관적인 민주화 주장 등,물론 언제나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의식의 밑바닥,그 밑바닥을 드러내주는 올바른 언어의 뒷받침이 없어서는 공허할 뿐 아니라 가식과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 스스로 앞장서서 권위주의 냄새가 나는 말을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무심결에 이를 게을리해온 언론매체 종사자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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