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엽서 함께 뛴 남북의 아들 딸(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가슴 뭉클한 정경이었다. 통일탁구팀의 활약을 TV화면에서 지켜보며 남북한 온 겨레가 한마음이 될 수 있었던 흐뭇한 감동이었다.
그 순간만은 대립과 불신으로 얼룩진 남북한의 차가운 현실을 우리는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앳된 선수들의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우리를 짓누르는 정치적·이념적 갈등의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남북한이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며 겨레의 동질성을 되찾아 나가는 길이 여러 갈래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의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며 암중모색하는 듯한 정치·군사회담에서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이 남북한 교류의 통로를 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일탁구팀은 보여주고 있다.
비록 반세기동안 격절돼 살아왔지만 한달남짓 합동훈련과정에서 엿보인 화합의 가능성은 다른 분야의 교류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최근 물꼬를 트기 시작한 몇 가닥의 교류들,쌀과 무연탄 등의 남북한 유무상통,양말기계의 선적등에서부터 평양 IPU총회의 남측 대표단이 참가할 수 있게 된 것 등은 그래서 남북한 관계개선과 교류의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시기적으로 이러한 교류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고자 한다. 일찍이 없었던 이러한 현상이 우연은 결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지금까지의 정치·군사회담 선결입장을 공식적으로는 고수하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전환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남측 IPU대표단이 판문점을 통해 입북할 수 있게 된데 주목하고자 한다. 직접적인 남북한의 접촉형식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처음으로 휴전선을 넘어 왕래할 수 있게 됐다는 정치적 상징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새로운 예를 만들었다는데서,또 북한의 의회대표단도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올 수 있는 선례를 마련한다는데서 앞으로 남북한 국회접촉 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일이다.
북한의 이러한 정책전환 신호는 이제 좀더 현실성있고 구체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대화의 길에 들어서는 단계로서 의미가 크다.
비록 고위급회담이 교착상태에 있지만 이러한 작은 성과를 바탕으로 신뢰와 이해의 폭을 넓혀가면 조만간 재개되어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반도주변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류의 흐름은 이제 더 이상 남북이 입씨름만 벌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주변국가들의 이해다툼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남북한이 대처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어느 때 보다 민족화해의 분위기가 유리한 주변사정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때다.
통일탁구팀의 활약을 보며 느꼈던 순수한 감동과 화합의 정신으로 앞으로의 대화와 접촉에 임해주기를 당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