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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강남북 아파트를 샀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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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 참여정부 4년 강남북 아파트값 상승률 최고 20배 차이
■ 2007년 강남과 강북 간의 격차 좁혀지기는 힘들 전망
■ “거품 터진다” 우려 목소리도… 오르막 살얼음판 아닌지 돌아봐야

월간중앙 똑같은 돈을 주고 샀더라도 어느 지역 아파트냐에 따라 많게는 시세차익이 평균 2배 가까이 벌어졌다. 참여정부 들어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1년가량 남은 기간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30대 주부 P씨와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사는 S씨. 강서구 K고등학교 동기생인 두 사람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쇼핑을 하거나 차를 마시는 15년지기 친구다. 결혼은 P씨가 S씨보다 4년이나 빨랐다.

다니던 회사에서 아홉 살 많은 남편과 사내커플이 된 P씨가 남편의 나이를 생각해 서둘러 결혼했기 때문이다. P씨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게 되면서 전업주부가 됐다. S씨 역시 5년 뒤 임신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게다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신접살림을 처가와 가까운 화곡동 빌라에 차리게 되면서 더욱 절친한 사이가 됐다. 그러나 비슷한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덕에 잘 통하는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요즘 집값 이야기가 나오면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만다.

P씨는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된 뒤 재테크에 매달렸다. P씨가 신접살림을 차린 빌라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집이었다.

때문에 욕실에서 물이 새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P씨는 곧 재건축되리라는 기대에 불편함을 감수했다. 예상은 적중해 빌라는 P씨가 사들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재건축에 들어갔고, P씨는 빌라를 팔아 꽤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P씨는 이 돈을 다시 길음 뉴타운 재개발 지분과 당시 신도시가 예정돼 있던 경기도 화성의 땅에 투자했다. 그 사이 태어난 아이의 교육문제 등을 생각하면 길음동은 그다지 마음에 드는 지역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도 시세차익만 챙긴 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 정도 더 이사할 생각으로 투자를 결심했다.

▶ 부유층의 상징인 강남구 대치동의 타워팰리스. 이 아파트 124평형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3년 9개월 만에 시세가 37억원 이상 상승했다.

대신 살 집이 없어진 P씨 부부는 아파트가 완공된 2006년 여름까지 처가살이를 했다. 남편은 처가에 얹혀사는 것을 극력 반대했지만 P씨는 “월급쟁이가 돈 벌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며 남편을 설득했다.

2006년 7월 길음 뉴타운에 입주할 당시만 해도 P씨는 기분이 좋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고, 사 놓은 땅도 제법 값이 뛰었기 때문이었다. 24평짜리 아파트와 땅값을 더하면 P씨의 재산은 6억 원 가까이 됐다.

1억 원도 안 되던 종잣돈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지난여름 P씨는 ‘이 추세라면 강남 입성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친구 S씨는 결혼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값이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부동산에는 문외한이었다. 남편 역시 회사일에만 열중할 뿐 돈 버는 방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S씨 부부가 P씨처럼 빌라에 살게 된 것은 단순히 아파트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북 뉴타운·경기도 땅값 더해도 강남 아파트만 못해

그런데 S씨가 임신한 지 몇 달 뒤 남편에게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멀쩡한 집을 동네 복덕방에 매물로 내놓더니 집에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글을 써 붙였다. 그러고는 퇴근하면 부동산 관련 책자와 인터넷 사이트에 빠져들었다.

S씨가 살던 빌라는 6개월 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다. S씨 부부가 샀을 때보다 200만 원이 떨어진 가격이었다. S씨는 “손해나는 장사를 왜 했느냐”며 나무랐지만 남편은 완고했다. “더 손해가 나더라도 지금 팔고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영원히 여기에서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남편의 말이었다.

2000년 봄, S씨 부부는 강남으로 이사했다. 10평 남짓한, 아파트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은 집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식구가 는데다 빌라였지만 30평이 넘는 집에 살던 그들에게는 살림살이 놓을 곳도 마땅찮을 만큼 좁았다.

남편이 말하던 ‘주거환경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게다가 남편은 집을 사느라 1억 원이 넘는 거액의 빚까지 졌다. S씨는 불만이 많았지만 인제 와서 남편을 원망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강남 아줌마’가 된 뒤에도 S씨는 집값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기 돌보랴, 집안일 하랴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던 S씨는 “10·29 대책이 어쩌고…”라며 열을 올리는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S씨는 우편함에 이상한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웬 건설회사가 보낸 처음 보는 아파트 설계도면과 자신들을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S씨는 남편에게 온 우편물로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편지를 건네줬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지 아파트 입구에서 정장을 입고 플래카드를 몸에 두른 채 90도로 인사하는 이상한 남자들이 보이기도 했다.

2004년 여름, 남편이 또 이사하자며 집을 팔겠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S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바탕 싸움을 각오하고 “아이도 곧 학교에 진학하고, 낯선 동네에 와서 이제 겨우 친구도 생기고 익숙해지려는데 또 집을 옮기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하게 나올 줄 알았던 남편은 이유 모를 웃음을 흘리며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동부이촌동에 살고 싶다고 했지? 40평짜리 아파트 당신 이름으로 사 줄게. 그리고 몇 년 동안 애 키우느라 외출도 거의 못해 봤지? 이사 가면 차 한 대 사줄 테니 아이 데리고 한동안 여행이나 다녀.”

영문을 몰라 눈이 동그래진 S씨에게 남편은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보여줬다. 가격란에는 ‘7억5,000만 원’이 기재돼 있었다.

2006년 11월 S씨는 새 집에 입주한 친구 P씨의 집을 방문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P씨는 S씨의 집값이 궁금해 “요새 너희 집은 시세가 얼마나 되니” 하고 물었다. S씨는 “글쎄…, 남편 말로는 10억 원 넘는다는 것 같던데…”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진 것이 비슷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강남에 아파트를 산 덕분에 대형 주택에 사는 백만장자 대열에 올라 있고, 강북에 집을 샀던 사람은 여전히 20평대 아파트에 살며 재테크에 몰두하는 서민으로 살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참여정부 들어 극명하게 갈린 두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큰 역할을 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던 2003년 3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3년9개월간의 서울지역 아파트값 변화를 살펴본 결과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강남을 상징하는 강남·서초·송파구 등 3개 구의 아파트와 대표적인 강북권인 도봉·노원·강북·성북구 등 4개 구의 아파트값은 거의 예외 없이 참여정부 출범 당시보다 올라 있었다.

그러나 강남권 주요 아파트값은 3년9개월간 많게는 37억3,000만 원에서 최소한 1억5,000만 원이 오른 데 비해 강북의 주요 아파트는 가장 많이 오른 곳이 3억 원가량이었다. 심지어 상승액이 750만 원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부자의 상징 중 하나인 대치동 타워팰리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평수인 124평형은 2003년 3월만 해도 가격이 불과(?) 27억6,500만 원 정도였다.

당시에도 타워팰리스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비싼 집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가주택이었지만, 지금 이 집을 사려면 65억 원을 줘야 한다. 가격상승률 135%, 3년9개월 만에 37억 원이 넘게 올랐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백만장자 양산

타워팰리스는 100평이 넘는 초대형 아파트이니 예외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강남권 아파트의 엄청난 시세 상승은 비단 강남 중심권의 호화 대형주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대명사로 한동안 이름을 날렸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은 정부의 온갖 규제와 언론의 질타 속에서도 참여정부 집권 3년9개월간 가격이 2배 넘게 올랐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6억 원에 못 미쳤던 은마아파트 34평형은 시세가 12억5,000만 원을 훌쩍 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때 유명세(?)를 믿고 은마아파트를 샀다면 이미 본전보다 많은 시세차익을 얻은 셈이다.

서민아파트의 대명사인 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 게다가 강남에서도 외곽지역에 속하는 개포동과 가락동의 10평대 아파트도 엄청난 시세 상승을 기록 중이다.

개포 주공 1단지 17평형은 2003년 3월 5억3,500만 원이던 가격이 2006년 12월에는 13억2,500만 원이 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해마다 2억 원 넘게 값이 뛰어 8억 원 가까이 올랐다. 가락 시영 1차 17평형 역시 같은 기간 3억6,500만 원에서 7억5,500만 원으로 값이 2배가 됐다.

반면 4년여 전 강남 아파트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강북지역 아파트를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잘만 골랐다면 강북에서도 꽤 많은 시세차익을 얻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성북구 정릉동의 e-편한세상 32평형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 시세가 2억4,500만 원으로 평당 1,000만 원에 못 미쳤지만 지금은 4억5,000만 원으로 2억 원이 넘게 뛰었다. 강남권 아파트에 비하면 시세차익이 그리 많지 않지만 투자 측면에서 본다면 제법 재미를 봤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강북권의 많은 아파트는 대부분 ‘대박’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같은 시기에 같은 값으로 살 수 있었던 아파트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해진다.

2003년 3월 3억5,000만 원가량의 자금이 있었다면 강남권에서는 소형 평형인 양재동 우성아파트 27평형과 서초구 잠원동의 한신2차 아파트 22평형 정도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강북권에서는 비교적 큰 집인 강북구 수유동 삼성래미안 43평형과 도봉구 창동의 창동아이파크 39평형을 구입할 수 있었다.

3년9개월이 흐른 뒤 이들 집은 어떻게 됐을까? 양재동 우성 27평형과 잠원동 한신2차 22평을 샀다면 시세차익은 각각 2억7,000만 원과 3억1,500만 원이다.

거의 투입자금과 맞먹는 수익을 얻은 것이다. 창동 아이파크 39평형을 샀어도 시세차익은 꽤 크다. 3년9개월간 가격 상승액은 2억 원가량. 수유동의 삼성래미안 43평을 샀다면 4년여간 1억 원 정도의 시세차익을 얻었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같은 값을 줬더라도 강북이냐 강남이냐에 따라 시세차익이 최고 3배가량 차이가 난다. 강북지역 아파트 소유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격상승률로 따져봐도 격차는 분명하다. 강남권 아파트는 상당수가 3년9개월간 가격이 2배 이상 뛰어 상승률이 100%를 넘었고, 적게 오른 곳도 50%에 육박했다.

하지만 강북권의 조사 대상 아파트 중 가격상승률이 100%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4년 가까운 시간 동안의 가격상승률이 한자릿수에 불과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값이 떨어진 곳도 있다.

강남·북 아파트 시세 상승률 격차 더 벌어질 듯

2007년에는 강남과 강북 간의 격차가 좁혀질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전문가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은 “현재 강남 아파트들은 최고 평당 7,000만 원대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2007년 9~10월께 강남권에 60평 이상 대형 아파트는 평당 8,000만 원대를 넘어설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아파트 거품은 2007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그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돼 어디서 멈출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점차 거세지고 있어 사정은 더하다. 지금 아파트 시세는 오르막길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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