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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에 맞설 경쟁세력 없다|정권 승계후의 북한…어떻게 될까|동 연구 주최「국제학술대회」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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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에서 김정일에게 권력이 승계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받은 후 무난히 안정된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얼마 못 가 대체 세력이 등장해 무너질 것인가.
18일 이북 5도민 중앙연합회부설 동화 연구소가 개최한 북한문제 국제 학술회의에서 북한연구에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지속성에 관한 집중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이날 전문가들은 서로전망을 달리함으로써 북한 정치 상황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편집자 주】
북한 정보에 밝은 일본의 사카이 다카시(법무성 연구위원)씨는『극동 지역의 안보·평화를 고려할 때 김일성만 죽으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김정일 체제하의 북한」이라는 국가와의 공존문제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제, 김정일의 권력기반은 현재 매우 포괄적이어서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당·3대 혁명소조·군 등 포괄적 조직 ▲선전·경제 등 여러 부문 ▲상층부 지도층과 중하 층 간부 망라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다세대 ▲개혁 세력에서 보수세력에 이르는 여러 정책성향의 지도자 등에 걸쳐 있음을 강조했다.
서대숙 교수(미 하와이대)도『북한에서 김정일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이 조직적으로 당·정부정책에 도전할 수도 없고 그런 조짐도 없다』고 지적, 김정일 권력기반이 안정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서 교수는『김정일이 권력을 승계 하면 최고 지도층에서 아버지 세대를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세대를 등용할 것』이라면서 조선 노동당 내부의 지도층 교체를 전망했다.
서 교수는 김정일이 당 중앙 위원회 정치 국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최 광(인민군 총 참모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등 빨치산출신의 원로 층을 은퇴시키고 빨치산 2세인 김 환(정무원 부총리)·전병호(당비서)등과 친인척인 김용순(당국 제 담당비서)등을 중용하고 ▲서윤석·강현수·최문선·임형구 등 지방 당 책임비서 출신들과 김달현(대외경제 위원장)·김정우(대외경제 사업부 부부장)등 경제관료들을 중 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 교수는 이와 함께 북한에서 사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많지 않으므로 이념 담당책임자인 황장엽을 비롯, 북한의 두뇌 집단인「주체 과학원」출신들이 앞으로 중 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양호민씨(「한국 논단」대표)는 김정일 체제에서 아버지 세대가 은퇴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면서도『김정일이 정책을 바꿔 대외개방,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지지 등으로 선회하고자 할 때 이념 담당비서인 황장엽 등을 교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양씨는 종국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이 들고 나오는 한 세습 정당화가 곤란하고 ▲현재 김정일의 권력기반 원천이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며 ▲중국·소련 등의 예에서 보듯이「지목된」후계자가 성공적으로 승 계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김정일 체제가 오래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창순씨(북한 연구소 이사장)도 양씨와 마찬가지로『현재의 김정일 권력이 김일성의 의중에 따른 것이며 객관화된 자료가 없어 김정일의「능력」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현재 김정일에 대항할 만한 경쟁자가 없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김일성이 죽으면 경제위기·세대간 갈등 등으로 심각한 국면을 맞이할 것이고 김정일은 2년 정도 밖에 지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씨는 특히 북한의 당·행정·산업경제·사회단체·인민군에 포진해 있는 중견간부들, 즉1백50만 명의「민족 인텔리」들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을 김정일에게까지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한식 교수(미 조지아 대)는 북한에서 줄곧 김일성의「카리스마」를 확립하는 운동이 전개돼 왔음을 환기시키면서 『이 과정에서 김일성은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김정일은 주체사상의 구현 자로 각각 설정됨으로써 김정일의 역할도 강화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김일성의 카리스마가 북한 주민들에게 내재화되어「종교화」에 까지 이른다면 김의 카리스마는 장기화될 수 있겠으나, 아직 종교화하기는 어려운 단계여서 김일성이 죽으면 머지않아 그의 카리스마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 김정일 체제의 장기성에 회의를 표시했다.
김정일 체제하에서는 관료 테그너크랫들이 권력을 잡게 되고 결국 김일성의 카리스마도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가운데 장달중 교수(서울대)는 이색적인 견해를 폈다.
장 교수는 북한이 현실적으로 주체 사상에 의한 세계관 변화에 상응하는「정치적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김정일 체제하에서의 김일성 카리스마도 상당한 지속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학술회의에서는 소련학자 미헤예프씨(과학원 아-태 연구센터 부장)가『김일성-김정일 체제의 공고성은 ▲외부세계와의 단절 ▲당의 정치·문화·산업 등에 대한 엄격한 지도체제 ▲북한 내부의 지역별 커뮤니케이션 제한 등에 기초한 것』 이라면서 북한 지도자들이 내부적으로 체제개혁을 원치 않지만 한-소 수교 등의 상황변화에 대응하면서「안정」과 「개방」사이를 오가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설명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미헤예프씨는 자신의 북한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북한 주민들은 일의 동기 및 성취 욕이 없어 평양 이외의 거주지에서는 생산 현장에 있는 10명 중 2명만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리며 그냥 서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북한 체제지속의 주요 특징이「동원된 참여 율」이 높은 점』이라며 반론을 폈고 이정식 교수는 북한 체제가 참여동원 체제이고 대체로 그렇게 실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면서도『그러나 동원운동을 너무 장기화, 빈번 화함에 따라 최근 당 정책이 주민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리=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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