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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바람부는 독일미술] 上. 대중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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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1990년대에 통일과 유럽통합을 겪은 독일미술이 21세기를 맞으며 전환의 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를 자처하던 파리와 뉴욕에 이어 통독의 상징 베를린이 시대정신을 품은 젊은 미술의 진원지로 꿈틀거린다. 독일 현대미술을 이끄는 쾰른·베를린·뮌헨·프랑크푸르트 네 도시를 잇는 현장 탐방기를 세 번에 걸쳐 싣는다.

지난 8일 독일 쾰른에 있는 미술관들은 자정이 지나도 문을 닫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7시에 시작한 '긴밤(랑에 나흐트)'행사가 새벽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쾰른 대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으로부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케테 콜비츠 미술관까지 밤새 미술을 즐기는 시민들과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평일에는 오후 대여섯시면 폐관하기에 미술관에 오기 힘든 직장인들을 위해 쾰른시에 있는 미술관들이 연합해 1년에 몇 번 밤샘 관람 축제를 여는 것이다.

쾰른 시민들에게'미술관주의자'로 이름난 카스퍼 쾨니히 루드비히 미술관 관장은 "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 첫 임무는 대중을 미술관으로 끌어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박미화(30)씨는 "'긴밤'행사에 미술사 전공생들을 해설자로 초대해 평소 교실에 갇혀있던 미술 얘기를 시민들에게 전하는 기회를 주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이런 '긴밤' 행사가 독일 대부분의 시에서 펼쳐진다"고 말했다.

미술을 대중 속으로, 생활 속으로 퍼뜨리려는 독일 정부의 노력은 지방자치제인 독일 현실에 맞게 시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뮌헨에 새로 문을 연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현대 그림수집방)'는 옛 그림 중심인 '알테 피나코테크' , 19세기 미술에 집중한 '노이에 피나코테크'와 더불어 박물관의 도시인 뮌헨의 3인방 미술관으로 시민들의 좋은 친구로 손꼽힌다.

가장 젊은 미술관인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는 그 이름에 걸맞게 건축과 디자인 등 현대적이면서 대중과 가까운 생활 미술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건물들이 부서진 독일의 도시 상황은'건축을 대중의 주요 논쟁거리로 삼게 하라'는 문화계 목소리로 집약되었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미술관은 들머리 벽면에 붙어있는 디자인 명품 모음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동차.의자.휴대전화기.컴퓨터 등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품들이 그 역사를 보여주며 진열장에서 자태를 뽐낸다.

이런 독일의 미술관 열기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전해져 미술품을 늘 가까이 하는 자세가 독일인들에게서 풍겼다. 지난 1일 '쾰른 아트페어'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평소 단련된 감식안으로 미술품을 느릿느릿 뜯어보며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한국 박여숙화랑(대표 박여숙)에서 출품한 김강용씨의 '벽돌'연작은 12점이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모았는데 그 이유가 찡했다. 마인츠에서 화가 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희철씨는 "독일인들이 이 벽돌 담에서 동서독 분단의 옛날을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역시 독일인들답다"고 말했다.

쾰른.뮌헨=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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