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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농촌개혁 로드맵] 농사 안 지어도 농촌에 살 수 있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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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년 후 TV 드라마 '전원일기'가 새로 방영된다면 응삼이나 일용이는 농민이 아니라 양촌리에 들어선 '농촌 체험 콘도'의 종업원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김회장네가 농사를 계속 짓는다면 아마도 논이 2만평쯤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농촌 환경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 규모가 커져 수입이 늘어나고, 농사를 포기한 사람도 농사 이외의 돈벌이로 여전히 농촌에서 사는 모습이다.

농림부가 마련한 '농업.농촌 종합대책'초안은 10년 후 농촌의 미래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나이 많고, 영세한 농가는 과감하게 퇴출시키는 대신 경쟁력있는 전업농들은 도시 근로자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목표다.

친환경 산업이나 휴양시설 등 농촌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농업 이외의 사업으로 소득을 늘리고, 농민에 대한 정부의 직접보조금을 늘려 퇴출된 소농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촌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10년 내 농가소득이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고,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주택난.빈민문제가 가중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자는 구상이다.

◇농촌 살리기=경쟁력없는 농업에 매달리지 않는 대신 '농촌 살리기'에 나선다.

이를 위해 농지에 대한 규제를 풀어 도시 자본의 유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이 확 바뀐다.

지금은 농지 소유가 금지된 제약회사가 약초 재배지의 농지를 사서 연구소나 가공 공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또 농림부는 새만금 사업 이후에는 간척을 더 이상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때 내는 대체조성비(간척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농촌의 땅값을 유지하기 위해 농지 은행의 도입도 검토된다.

주5일 근무제에 맞춰 농촌 관광마을 1천곳이 조성되고, 지역 고유의 문화제 등 무형자산을 '향토 지적 재산'으로 발굴해 개발한다.

복지도 강화돼 20년간 연금 보험료를 낸 농민의 경우 2014년 이후에는 월 30만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령농의 경우 농사를 포기하더라도 땅값과 보조금을 합치면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 건강보험료 경감률도 22%에서 50%로 확대된다. 최고 1천만원까지 보상이 가능한 농업인 안전공제도 산재보험 수준으로 확대된다.

◇농업 경쟁력 강화=농림부는 57조원이 투입된 우루과이라운드(UR) 대책으로 기본적인 생산 인프라는 갖춰졌다고 보고 앞으로는 생산 규모를 키우고 고가.고품질 농산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쌀의 경우는 2ha 이상의 논을 가진 11만2천여가구가 집중 육성대상이다. 원예산업은 산지별로 브랜드를 만들어 수출 전략산업으로 키운다. 현재 25억달러 수준인 농산물 수출액을 10년 후에는 50억달러대로 늘린다는 목표다.

축산업은 10년 후 2만가구가 전체 사육의 85%를 담당토록 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또 다른 농업 경쟁력의 원천은 친환경농업이다. 현재 2.5% 수준인 친환경 농업의 비중을 2010년까지 10%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농가의 화학비료 구매에 대한 지원은 2005년부터 중단한다.

이와 함께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창업농 양성 전문기관으로 개편해 매년 1천명의 차세대 '젊은 농군'으로 키운다. 농업에서도 세대교체를 하자는 것이다.

반면 빚을 깎아주는 예산은 점차 축소해 올해 국회에 제출된 부채경감 특별법이 사실상 마지막 농가부채 대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관된 실천이 관건=전문가들은 농지제도 개선과 농외소득 확대를 통해 농촌 사회를 유지한다는 정부 정책의 방향에는 대체로 찬성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방원칙에 비추어 농민에 대한 소득 보전은 직불제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선 적잖은 우려가 있다.

농촌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행정구역상으로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면 사실상 도시화된 지역에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자금이 엉뚱하게 농촌의 다방 개업에 사용되는 식의 실패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새로운 대책에 앞서 UR 대책에 대한 정부의 정확한 평가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번 대책은 복지.교육 등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지만 실현방안이 구체적이지 않고 이미 조직화된 농민단체를 활용하는 방안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또 예산확보 방안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어 일관된 정책 집행이 힘들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정영일(경제학)교수는 "대책을 세우는 것만큼 일관된 추진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중장기 대책을 '농업 농촌 기본법'에 담아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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