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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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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6년 한국 사회는 아마추어보다 못한 프로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3년 전 인천 시민들이 주주가 돼 창단한 프로축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올해 5억원이 넘는 경영 흑자를 기록했다. 진정한 프로들이 모여 '더 벌고, 덜 쓰는'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이게 바로 프로'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시민 구단(대전.인천.대구.경남)은 '가난한 구단'과 동의어다. 거액 연봉 선수를 데려오기 어렵고, 숙소.훈련장 등 시설도 열악하다. 그래서 수원(삼성).서울(GS).울산(현대중공업) 등 모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 '기업 구단'을 부러워한다. 이런 점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의 옹골찬 '홀로 서기'는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시민 속으로=인천은 창단을 앞둔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시민주 공모를 했다. 4만7000명의 인천 시민이 46억원어치의 주식을 샀다. '개미 주주'들의 쌈짓돈은 창단에 큰 힘이 됐고, 이들은 인천의 열렬한 응원군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 서포터스는 원정경기에서도 상대 서포터스를 압도하는 응원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구단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충실한 마케팅으로 보답했다. 인천은 창단 2년째인 지난해 정규리그 통합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뤘다. 인천은 홈경기마다 '구민의 날'을 정해 해당 구민을 무료 초청했다. 하프타임에는 풍물놀이.댄스시범 등 구민이 참여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지난해 시작한 미들스타 리그(순수 아마추어 중학생 축구대회)는 인천에 축구 열기를 일으켰고, 시민과 축구단을 연결하는 촉매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구단 살림살이도 '짠물 정신'으로 했다. 불요불급한 경비를 줄이고, 선수단 연봉은 자체 샐러리캡(총연봉 상한제)을 도입해 60억원을 넘지 않게 조절했다.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유망주들을 데려와 잘 키운 다음 높은 이적료를 받고 다른 구단에 넘기는 방식으로 오히려 돈을 번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다. 홍보도 '저예산 고효율'로 했다. 팸플릿.포스터 등은 최소화하고, 9만8000명의 멤버십 회원에게 휴대전화로 경기 일정과 결과 등을 알려줬다.

◆ "코스닥으로 간다"=흑자를 내긴 했지만 인천의 수익구조는 아직 불안정하고 기형적이다. 수입의 80% 정도를 기업 스폰서(유니폼 및 경기장 A보드 광고)에 의존한다. 4만5000원짜리 레플리카(선수단 유니폼)를 사면 홈 전 경기 입장 티켓을 주는 바람에 입장 수입은 9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레플리카를 4만 장이나 팔아 9억원의 수입을 올렸고, 고정 관중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천 구단은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구단주인 안상수 인천시장은 "2년 더 흑자를 내서 상장 요건을 갖추면 2009년 코스닥에 등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증시에서 수익을 올려 구단 운영에 쓰고, 주주에게 배당도 하겠다는 것이다. 인천이 상장하게 되면 국내 프로 스포츠단 최초의 상장 기업이 된다.

인천 구단의 성공 사례는 다른 프로축구 구단은 물론 다른 프로 종목 팀에도 큰 자극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 대부분의 프로 구단이 모기업에서 운영비를 타내 살림을 꾸려나간다. 모기업에서는 "어차피 홍보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돈 벌 생각을 하지 말고 성적만 잘 내라"고 요구한다. '무늬만 프로'인 셈이다.

인천 안종복 단장은 "K-리그 모든 구단이 우승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각자 형편에 맞는 생존 모델을 만들고 짜임새 있는 운영을 한다면 다른 팀들도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시민 구단으로 운영되는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절반 이상이 흑자를 내고 있다.

인천=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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