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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일선기자」 홍종인옹(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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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신문들 목표가 없다”/기자는 자신과 싸움서 이겨야/정직한 사람만 말할 자격 있어
언론의 자정과 신뢰,자율과 책임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른다섯번째 「신문의 날」을 맞았다. 여느해와는 달리 언론인 스스로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신뢰받고 책임있는 「환경감시자」이기를 다짐하는 날로 맞고 있다.
「독립신문」 창간기념일에서 따온 이날은 여태껏 정권의 탄압에 맞서는 결의를 다짐하는 그런 날이었다. 자유당때의 출발부터도 그랬다. 그동안 독재권력은 신문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우리 언론은 보다 무서운 적이 우리 내부에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날로 이날을 맞고 있다.
정치권력의 탄압에 대항해온 기자정신은 금품의 유혹이나 집단의 횡포에서 자유로워야할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원로 언론인 홍종인옹(89)을 서울 반포동아파트 자택으로 찾아 오늘의 언론과 신문기자의 몸가짐을 들었다. 「홍박」이란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홍옹은 구순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요즘도 매일 신문을 보면서 이성의 머리와 감성의 가슴을 갖고 산다는 「영원한 일선기자」 홍박. 그는 시대가 바뀌어도 형태만 달라질뿐 기자에 대한 압력과 유혹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며,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기자의 자세가 국민을 깨어있게 하는 보루라고 했다.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은 꽤 좋은 편이지. 젊을때 했던 운동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그는 몇해전까지 이순테니스회·한국산악회회장직을 맡았다).
­취미생활도 여전하십니까.
▲요즘은 통 손을 놓았지. 봄이 되면 스케치라도 하려고 화구들을 챙기고 있어(그의 거실에는 본인이 직접 구운 도자기와 한라산을 주제로 그린 유화,베란다 가득한 화초들이 그의 다양한 취미의 일면을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가 치르고 있는 민주화의 진통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올해는 이미 기초의회 선거를 치렀고 6월이면 광역의회선거도 있어 지방화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려가면서 언론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막중하다는 부담을 갖게됩니다. 「신문의 날」을 맞아 우리 언론에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
▲독립신문을 창간하던 당시를 생각해봐. 서재필박사를 비롯한 선각자들이 당시 어지럽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새시대를 개척하고 개명된 사회를 일구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그 정신이 오늘날에도 필요해요. 오늘날과 같이 훌륭한 시설과 제약없는 환경에서 신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하는 철학이 없이 쉽게만 신문을 만들려고 한다면 책임의 유기가 될 수 밖에 없지.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의 신문이 같을 수 없고 시대와 국가에 따라 신문에 요구되는 기능과 역할이 다르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의 한국언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어요. 제작기술이나 과정이 가위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점은 그 옛날 손으로 땅을 파듯 어렵게 신문을 만들때나 요즘과 같이 초고속 윤전기로 신문을 제작할때나 그 근간을 이루는 신문의 정신은 같다는 것이야. 언론자유와 신문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오늘의 신문이 얼마나 충실했느냐,과연 어느 정도로 지식과 슬기를 갖추고 현명하고 용감하게 신문의 본분을 지켜나갔느냐는 물음에 솔직히 가슴을 열고 대답해야해.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희망을 버려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요즘의 신문들이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특히 힘써야할 점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요즘 신문은 목표가 없는 것같아. 우리의 언론계 선각자들이 뒤처진 우리 사회를 일깨우는 일이 자주독립의 길이라 믿고 목표를 세웠던 것처럼 오늘의 언론도 선진문명과 더불어 손잡고 나갈 수 있도록 국민을 계도하는 목표를 세워 새로운 지식을 공급하고 사회가 깨어 있도록 하는 일을 맡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인 스스로가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공부를 해야해.
­요즘 기자들이 기자정신에 투철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습니다. 선배들에 비해 사명감과 투지가 모자라고 샐러리맨화 한다는 자성도 있는데요.
▲요즘 기자들 좀 약해보여. 선배들이 신문을 만들때는 모든 것이 어려웠어. 시설이나 대우·주변환경 모두가 힘들다보니 더많은 노력이 들었고 자연스레 투지와 기개가 없으면 도태당하기 십상이었지. 신문기자는 쉽지않은 직업이야. 무척 싸워야해. 그 싸움에 이기려면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지.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 어떤 유혹에도 끌리지 않도록 자신을 담금질해야지. 그래야만 언론자유를 지키고 신문의 독립을 유지하는 힘이 생기는게야.
­6공이전처럼 언론에 가해졌던 물리적인 제약은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정치적 권력이나 금력에 의한 압력과 유혹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언론의 자정을 위한 노력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관권과 금권의 횡포는 형태만 다를뿐 비슷할게요. 권력과 금력이 얽히고 설킨 정치의 부패,사회의 혼탁속에서 신문과 기자의 타락이란 것도 사회의 큰 비난거리가 아니될 수 없지. 사실 정치의 부조리와 경제계의 부정이라는 물욕 덩어리들은 신문을 어떻게 해서든 장님으로 만들려는 것이 속성이거든. 그러나 정계나 업계의 물이 흐리다고해도 신문만은 그런대로 할 말을 해줘야 국민들의 숨막힘을 막을 수 있게돼.
그러기 위해선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기자는 정직해야해. 또 사회의 부패를 폭로하고 냉혹한 비판을 내리는 것과 같이 자기비판과 자신의 주변을 항상 경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지.
­신문과 인연을 맺은지는 얼마나 되는 셈입니까.
▲나는 단한번도 언론계 일선을 떠났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으니까 올해로만 67년을 기자로 버티어온 셈이야.<엄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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