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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은 애국 안된다/김경동(시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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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국민은 이번 지방의회 선거에서 참으로 장한 모습을 보였다. 투표율이 겨우 과반수를 턱걸이 한걸 보면 국민의 정치적 관심도가 저조하며,여당 성향의 인사들이 다수 선출되었으므로 아직 정치의식 수준이 낮고,지방색을 극복하지 못한 편파적 투표관행을 여지껏 탈피하지 못했으며,후보자나 당선자의 직업적 분포로 보아 선택의 여지가 한정되었고,결국 이 모두가 정치전반에 대한 불신 탓이지만 실은 국민의 민주의식과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등,온갖 해석과 평가와 의견들이 보도매체를 수놓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치사를 먹칠했던 체육관 선거니,부정 선거니,타락선거니,금권 선거니 하는 상처들은 별로 되살아 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진일보한 셈이니 우리 모두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 마땅하다.
○크게 나아진 선거풍토
더군다나 많은 전문가와 논평자들은 실로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치른 기초단위 지방의회 선거라는 사실을 간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삼십성상이라면 가위 한세대를 이루는 햇수이며,현대사회의 변동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특징에 비추어 보면 한 세대란 말 그대로 엄청난 세월이다. 그 시간을 우리는 지방자치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요건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왔으며,인구학적으로도 당시에 20세 이상의 유권자였던 지금의 50대 이상은 현재 유권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으니까 대다수는 평생 처음으로 지방의회선거를 맞은 사람들이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요하는 제도이지,관념과 외침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므로,그 기간이 정말 길고도 지루한 기다림의 동면기였기에 이번의 선거는 그만큼 뜻깊은 실험으로 역사에 기록되어도 좋을 줄 안다.
○처음부터 기대는 금물
투표율이 낮은 까닭은 여러가지 있겠으나 우선 기초의회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국민이 충분한 지식을 함양할 여유가 없이 부리나케 정치인들의 일정에 맞춰 치러진 때문이고,또 소규모의 촌락이나 지방도시는 몰라도 대도시에서는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익히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젊고 의식이 자유분방한 소위 신종 젊은 세대중에는 모처럼의 휴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기초의회가 대단한 정치바닥도 아닌터에 그렇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여당·야당하지만,그래도 지방유지로 지역일에 관심있는 이들이야 으레 정부와 가까운 사람들일거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또 직업상 각 분야의 「자영업자」가 압도한 것은 우리의 지역 경제가 주로 이들 프티 부르좌라는 중간층 자영업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증좌에 불과하고,지역 감정의 요소도 지방의회 수준에서야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지지하는 일인데 이상할 것도,문제삼을 건덕지도 없는 것이다.
정작,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은 이번의 경험을 거울 삼아 앞으로 다가올 각종 선거들을 잘 치러야 한다는 것과 새로 뽑힌 의원들이 지방살림을 잘 꾸려 나가도록 뒷받침해 주고 지켜보는 일이다.
그리고 서둘러 첨부하지만,그들도 생전 처음 해보는 서툰 일이니 너무 큰 기대를 걸 필요도 없다. 서로가 배우고 깨우치면 그 경험이 더 소중한 법이다. 다음에 올 광역단위의 지방의회와 단체장 선거,또 잇따를 국회의원 선거도 그런 자세로 맞이하고 지켜 보려는 각오가 더 중요하다.
다만 지금껏 우리의 정치가 극도의 권력 집중으로 멍들어 온 터이므로 지방의회가 성립하고 교육 자치가 이루어짐으로써 권력이 차츰 지방으로 분산되는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헌신각오 필요
여기에서 위험 요소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 「관료주의」의 끈질기고 무서운 저항이다. 민주화란 정치 제도와 관행에서의 민주적인 원리의 정착과 더불어 사회적 자율화를 수반하는 과정인데,국가가 그 권한을 대폭 민간부문에 양보하여 간섭의 손길을 거두어 들여야 함과 동시에 중앙정부에 집중해 있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조처도 따라야만 제대로 자율화가 성취될 수 있다. 지방의회는 바로 이 수준에서 정부의 관료주의적 저항과 부정을 견제하고 극복하는 기능을 하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그러므로 지방의회의 선량들은 행여 이 기회에 지방정부와 결탁해 자신의 사리사욕이나 채워보자는 얄팍한 욕망일랑 꿈에도 가질 생각을 말고,진정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단단한 결심으로 일해주어야 한다. 며칠전 택시기사가 한 말을 모두 함께 되새겨 볼만하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애국자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말로만 떠들지 않고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아쉬워요!』 이런 비장한 국민의 염원을 결연한 의지로 충족시키겠다는 태도를 모든 정치인과 선량들에게 기대해 본다.<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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