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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통상 마찰-「단기 처방」으로 못 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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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걸프 전쟁이 끝나면서 우루과이라운드 (UR) 협상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과거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게 거의 틀림없다.
지난 연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실패한 직후부터 미국은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갑자기 강화했다. UR의 농산물 분야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주장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우리 정부는 어려운 입장에서 미국과 통상 협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미국의 태도가 갑자기 강경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알고있어야 앞으로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 통상 마찰과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불가피한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한미간 무역 규모가 연 3백억 달러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것에 못지 않게 한국도 미국에 중요한 시장이며, 이렇게 3백억 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거래가 있게 되면 피차간 마찰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경제 대결의 시대가 전개됨에 따라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군사적 중요성이 줄어들고, 과거 미국식 시장 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던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셋째,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한동안 계속되자 한국은 국제 시장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위험한 경쟁 상대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정치적, 군사적 이유 때문에 통상에서 한국을 관대하게 취급하건 시대가 가버리고 냉엄한 경제 대결의 시대가 닥친 것이다. 따라서 한미 통상 문제는 장기적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단기적인 통상 외교로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통상 외교의 차원에서 해야할 일도 많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국인들이 한국을 「제2의 일본」으로 생각하는 것을 고쳐야한다. 한국을 일본과 동류로 보는 시각 속에는 두 가지 약간 다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한국이 멀지 않은 장래에 중요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할 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과거 일본과 같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과거 몇년간 계속된 대미 무역 흑자와, 일본이 한국에 도전 당하고 있다는 몇몇 일본인들의 주장, 그리고 이 때문에 자기 도취에 빠져버린 우리 스스로에 의하여 미국 사회에 광범하게 확산된 생각이다. 앞으로 세계 경제의 핵이 될 기술 집약 산업 부문에서 한국이 미국·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미국 정부 내에서 가장 보호무역주의적인 대외 강경파인 상무부조차도 지난해 여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자 산업 6개 분야 중에서 한국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 칩과 소형 컴퓨터 등 2개 분야뿐이며, 반면 일본과 EC는 미국과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의 기술 격차를 차치하더라도,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경제 발전 단계에 있으리라는 짐작은 커다란 착각이다.
또 한가지는 내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의 산업 정책과 대미 통상 전략 등이 일본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일본과 비슷한 발전 전략을 채택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여하튼 미국은 반도체·통신 기기·쇠고기 등의 분야에서 수년 전에 한국에 앞서 일본과 통상 협상을 하였는데, 당시 일본의 주장·수법·전략을 몇년 후 한국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 자체를 모르고 미국과 협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미국인들의 착각을 바로 잡는 것은 대미 통상 외교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내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똑바로 알아야한다. 보호무역주의적인 의회와 대항하여 자유 무역 원칙을 고수하던 레이건 행정부와 달리 부시 행정부는 2년 전 출발 당시부터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대규모 무역 적자가 수년간 계속되고 여론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적인 민주당 지배의 의회가 더욱 보호주의화 되었기 때문이다.
상무부·농무부가 더욱 보호주의적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군사 전략적 이유 때문에 통상 협상에서 전통적으로 외국에 관대했던 국무부조차도 베이커 장관이 여론을 중시하여 보호주주의 쪽으로 기울고 있고, 부시 대통령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태에서 UR가 실패하게되자 무역 대표부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UR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주장에 강력히 반대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대한 온건파들은 설 곳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런 판국에서 우리의 과소비 억제 운동과 수출 증대 정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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