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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아르빌서 대통령 껴안았던 병사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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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고했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 주세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를 마치고 귀향한 장병 10명에게 잇따라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그리고 해안경비대에서 2명씩 선정됐다.

한 달 전인 11월 23일 추수감사절에도 부시 대통령은 10명의 병사에게 전화해 노고를 치하했다. 이라크에서 알래스카까지 전 세계에 주둔 중인 미군이 망라됐다. 부시 대통령은 7월 환갑 잔치도 장병과 함께했다. 생일을 이틀 앞둔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 기지를 찾아 생일 파티를 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취임 이래 6년간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에 빠짐없이 장병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 격려하곤 했다.

2003년 추수감사절에는 바그다드 미군기지를 깜짝 방문해 병사들에게 칠면조 고기를 썰어 주기도 했다. 미국은 전쟁 중이다.

또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3000명에 육박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의 장병 격려는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때마다 지역과 병과를 감안해 군인들에게 전화를 걸고, 전 세계 기지를 찾아다니며 등을 다독거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군인에게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6년간 계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공통점이 꽤 있다. 올해 환갑을 맞은 나이나 소신이 강하다는 점이 그렇다. 현재 지지율이 재임 중 바닥인 점도 비슷하다. 군에 대한 애정도 2년 전까지는 비슷했다.

2004년 12월 8일 노 대통령은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를 갑자기 방문해 "여러분의 땀이 대한민국의 힘이요 외교력이다. 장하다. 자랑스럽다"고 말해 병사들의 환호를 받았다. 감격한 한 병사가 뛰어나와 노 대통령을 끌어안고 한 바퀴 돌기까지 했다. 그런 노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통 연설에서 군 복무를 "썩는다"고 표현했다.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노 대통령을 껴안았던 병사는 자신의 병역이 '썩는 일'이라는 말에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