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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도 효자 있다' 속담 나오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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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이라도 장기간 부모님 병 수발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고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식들이 서로 부양을 떠넘기는 바람에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비윤리적이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손상되는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계속 일어나는 것은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된다. 상류층은 값비싼 유료 요양시설을 이용하고, 기초생활수급자는 무료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중산.서민층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이용료가 월 200만원 내외로 부담이 너무 크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올해 4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9.5%를 차지한다. 2010년 10.9%, 2020년 15.7%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중풍 등 다른 사람의 수발이 필요한 노인도 급격히 증가해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12.1%다. 2010년 79만 명, 2020년 114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 초기에 공적 노인요양 보장체계를 확립해 국민의 노후 불안 해소와 노인 가정의 부담을 줄이는 국가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8년 7월 시행을 목표로 노인수발보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여야 국회의원 6명도 각각 법안을 제출했으나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정부안은 65세 이상 노인 및 64세 이하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자 중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면 전문 수발요원이 가정을 방문해 식사, 목욕, 가사 지원, 간호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또는 요양시설에 입소해 전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당초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제정해 2008년 7월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발 대상자 범위와 장애인 포함 여부, 정부 지원금 규모와 본인 부담률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해 내년 2월로 연기된 상태다. 지금은 노인수발보험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전국 8개 시.군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계획적이고 전문적인 수발과 간호 서비스가 제공돼 신체기능 호전과 사망률 감소 등 노인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된다. 요양시설 이용료는 현재 월 200만원 내외에서 월 40만원 정도로 줄어 가족 부담이 대폭 경감된다. 수발 관리요원 3800명과 수발요원 5만2000명의 서비스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요양시설.요양병원 등 요양보호 인프라도 확충돼 요양보호 시장 규모는 2011년까지 약 9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크게 기대할 수 있다. 노인성 질환은 비싼 급성기병상이 아닌 요양시설이나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노인 의료비 사용 적정화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개호보험 도입 후 노인의료비가 12%가량 감소했다. 빨리 이 제도가 시행돼 '긴 병에도 효자 있다'는 새로운 속담이 나오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원길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