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건 "허허 … 이전투구 않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건 전 총리가 24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외국인 근로자센터를 방문한 뒤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을 뒤로한 채 차에 오르고 있다.변선구 기자

"허허…."

고건 전 국무총리는 24일 이런 소리를 냈다. 혀 차는 소리였다.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나는 그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한 데 이어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24일까지 이틀 연속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발표한 데 대해서다. 고 전 총리로선 기가 차고 황당할 노릇이었다고 한다. 측근들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반응을 보였다.

고 전 총리 본인은 말을 아꼈다. 표정은 굳었다. 이날 성동구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오늘은 그 얘기를 안 하기로 했다"고만 했다. 그는 23일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었다.

거친 말로 반응하면 노 대통령한테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분석이다.

◆ "기관총 쏘아놓고 권총도 안 쏘았다?"=하지만 고 전 총리의 주변은 격앙됐다. 고 전 총리 캠프에서 기획팀장 역을 하고 있는 이희순씨는 "국민 모두가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비난했다는 것을 안다"며 "국민의 국어실력을 의심하거나 얕잡아 보면 안 된다"고 쏘아붙였다.

이 팀장은 "혹시나 해서 다시 읽었는데 엄연히 고 전 총리를 비난한 것"이라며 "같은 한국말인데 국민과 해석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느냐"고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판했다. 또 다른 측근은 "기관총을 난사해 놓고 자기는 권총도 안 쏘았다고 하는 꼴"이라고 했다.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을 비판해왔다"거나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대해 측근들은 "고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로서 참여정부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에 비판을 아껴왔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부터 (노 대통령 측이 고 전 총리를) 견제했다는 건 국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 "영남후보 세우기 위한 것"=고 전 총리가 직접 맞대응하지 않기로 한 건 자칫 청와대와의 이전투구에 빠져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노 대통령과 싸우는 건 아니다"라고 측근들은 말했다. 또 노 대통령의 도발이 통합신당파의 입지를 축소시켜 노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 즉 영남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 홍보수석실의 집요한 공격=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23일 고 전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고 전 총리가 22일 성명서를 내 "노 대통령의 고립은 무능력과 나누기 정치 탓"이란 취지로 반격한 데 대한 재반격이었다.

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나는 그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나를 공격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전 총리가) 사과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홍보수석실도 같은 날 "고 전 총리의 역량을 평가한 게 아니었다"고 가세했다.

고 전 총리가 이에 대해 "대통령은 진의가 아니라고 하던데 국민이 무슨 뜻으로 들었는가가 중요하다"고 반박하자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4일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가 이렇듯 신속하고 명백하게 의사표시하는 게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인지 궁금하다"고 재차 공격했다.

고정애.이가영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 평통 발언=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평통)'의 상임위에서 안보를 주제로 70여 분간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낸 발언. 고건 전 총리의 기용에 대해 "실패한 인사"라고 했고, 전직 국방장관.참모총장들에겐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직무유기 아니냐"는 식의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평통 발언=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평통)'의 상임위에서 안보를 주제로 70여 분간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낸 발언. 고건 전 총리의 기용에 대해 "실패한 인사"라고 했고, 전직 국방장관.참모총장들에겐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직무유기 아니냐"는 식의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