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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정당 리더십이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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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군사독재와 양金 시대가 끝났는데도 한국 정치는 왜 만년지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까. 불법 대선자금 문제나 권력형 비리, 여야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 등 구태(舊態)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 대한 이런 평가는 가혹한 점이 있다.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규모와 강도 면에선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대선자금의 경우 1987년 노태우씨와 3金씨가 출마했을 때 조(兆)단위를 넘겼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지난해 대선에선 여야 모두 많아야 1천억원을 크게 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추정이다.

권력형 비리도 수법은 지저분해졌을지 몰라도 규모가 줄어든 것은 틀림없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처럼 집권 말기에 아들과 측근 비리가 불거져 나와 식물 대통령이 되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 盧대통령이 특별한 의지를 가졌거나 주변 인사들이 유별나게 깨끗해서가 아니다.

현 집권 측이 메이저 신문들에 대해 취해온 적대적 자세가 뜻밖의 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지금 권력과 언론은 '건강한 긴장관계'가 아니라 '소모적.파괴적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언론도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에 대해 감시의 눈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가장 주목할 것은 정당 리더십의 변화다. 이젠 누구도 당을 개인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고, 수십명의 의원을 계보로 거느릴 수도 없게 됐다. 김영삼씨가 3당 합당을 결정하면 통일민주당이 사라지고, 김대중씨가 깃발을 들면 갑자기 국민회의가 창당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 열린우리당 김원기 창당준비위원장이 결코 후보들의 당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물론 아직 지역감정의 벽이 허물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남 또는 호남에서 특정 정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니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당론을 정하는 게 쉽지 않다. 崔대표와 홍사덕 총무가 선거구제와 개헌 문제를 놓고 입장을 달리하고, 한나라당 지도부가 전격 제안한 정치개혁안에 서청원 전 대표와 중진 의원들이 "당론 수렴 절차가 없었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대선자금 특검 추진 방침에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일단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게 민심"이라며 반대하고, 민주당에서도 당 지도부의 특검 협조 방침에 상당수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손잡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며 반대한다. 열린우리당에선 김근태 원내대표와 김원기 창당준비위원장의 입장이 종종 달리 나타난다. 이라크 2차 파병안에 대해선 의원 소신에 따라 찬반이 엇갈린다. 3당 모두 현 지도부는 강력한 내부 도전에 시달린다.

과거 정당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여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거나 "야당이 전혀 야당답지 못하다"며 '중구난방'이라고 답답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꼭 당 대표의 무능으로 몰아붙일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정권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여당, 투쟁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는 야당으로의 변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당분간은 정치인도 국민도 이런 정당 모습에 적응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시대가 양金씨와는 다른 리더십과 정치 행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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