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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본홋카이도|호수…눈…산…원시림…|온천과 스키의 별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비행기로 1∼2시간 거리, 사람들 생김새까지 똑같은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지만 「먼 이웃」, 우리의 일본에 대한 생각은 그렇게 복합적이다.
큰 섬 4개를 중심으로 4천여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이 나라의 북쪽 끝에 있는 섬이 홋카이도(북해도)다.

<일본 속의 강원도>
일본 땅 중에서 아직 개발이 덜 돼 있는데다 기후와 풍토가 독특한 편이어서 일본 안에서도 조금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겨준다.
수많은 스키휴양지를 만들어낸 풍부한 눈과 산, 광대하게 펼쳐진 원시림 등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일본 속의 강원도」라 할만한 곳이다.
현재의 일본인들에게 밀려 혼슈에서 홋카이도까지 밀려온 아이누족의 생활터전이었던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척된 것은 불과 1백년 남짓.
명치시대가 개막되면서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맞설겸 새로운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식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로 인해 이 큰 섬의 야생상태가 조금은 훼손됐지만 전나무와 가문비나무의 원시림이라든가, 오염되지 않은 호수 등 국립공원이 네군데나 지정돼 있기도 하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삿포로. 89년 여름부터 대한항공편이 논스톱으로 연결해 여행길도 훨씬 편해졌다. 그래도 한일간 항공노선중에서는 유일하게 2시간이 넘게 비행시간이 소요되는 가장 먼 일본도시다.
삿포로의 관문인 지토세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공항청사와 연결된 정거장에서 열차를 타고 노보리베쓰(등별) 온천지대로 가보는 것도 시간절약의 한 방법이다.
노보리베쓰는 「온천백화점」이라 불릴만큼 다양한 종류의 온천수로 이름이 높다.
같은 목욕탕 속에서도 탐마다 서로 다른 온천물이 담겨있어 수질을 표시한 푯말을 붙여 놓고 있다. 탈의실에서 목욕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야외에 있는 노천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해놓은 목욕장도 여러개 있다.
노보리베쓰 온천지대에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뜨거운 지하수가 흘러 넘쳐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지요쿠(지옥곡)에 가볼 수 있다. 폭발한 화산이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진 부스럼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1시간 정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딛고 있는 땀 밑의 신비감 비슷한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천지대에서 샛길로 들어가면 해발 5백50m의 시호레이(사방령)와 구마목장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탈수 있다.
구마목장에는 살아있는 곰들의 쇼와 함께 뱃속의 곰에서부터 새끼곰·어미곰 등을 나이별로 볼 수 있는 박제전시실도 있는데 웅담의 정확한 위치까지 알 수 있을 만큼 곰에 대한 백과사전 같은 전시장이다.
지토세에서 노보리베쓰까지 열차여행을 할 경우 삿포로로 들어올 때는 미리 관광택시를 예약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인 도야코, 불과 15년전에 폭발한 활화산 우수잔(유주산),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릴 만큼 모양이 비슷한 양제산 등을 둘러보는 도로여행이 좋다.
대절료는 4만엔 정도인데 일본의 관습처럼 운전기사는 팁을 받지 않는다.
손님과는 다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더라도 식대는 손님이 내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필자의 운전을 맡았던 이토(이등무웅·44)씨는 비싼 것이 아니라며 점심 값 8백엔을 굳이 자신이 내는 자존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사람들 사는 형편과 운전기사들의 예의를 살펴보기 위해 이토씨에 대한 얘기를 좀더 소개해본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쯤 먼저 호텔 로비에 도착해 있다가 자신의 집 전화와 무선호출이 가능한 조합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공손히 내민다.
택시를 몰다가 증명사진을 찍을만한 곳에 손님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받아 촬영을 해주고, 자신도 망원렌즈까지 부착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여기저기 촬영을 해대는 폼이 준프로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것 같다고 더듬더듬 말을 건네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5권의 앨범을 꺼내온다.
그렇게 뛰어난 작품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솜씨였다. 재미있는 누드사진도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부인이 보면 싫어한다며 껄껄 웃는다.

<도로여행 권할만>
노보리베쓰에서 삿포로까지의 겨울철 택시여행은 눈덮인 산과 호수, 차안에서 내다보이는 나뭇가지에 핀 눈꽃, 꾸불꾸불한 산길, 빙판길의 스릴 등으로 지루한 줄 모르는 여섯 시간쯤의 여행코스다. 봄과 여름에는 짙푸르게 우거진 녹음과 각색의 꽃들이 또한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그에 비해 삿포로 시내관광은 좀 단조롭다. 역사가 짧아 고색창연한 유적지가 없는 탓이다.
그 중에서도 삿포로 역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오도리공원은 매년 2월 눈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는 아카시아나무,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밭과 대분수 등이 여행객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5월께에는 라일락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리오데자네이로의 리오축제나 뮌헨의 옥토버축제와 함께 세계 3대축제의 하나로 손꼽히는 삿포로의 「유키마쓰리(눈축제)」는 대설로 인한 피해를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나무로 기초구조물을 만들고 여기저기에서 실어 나른 눈을 채운 뒤 며칠간 얼렸다가 망치나 끌 등의 연장까지 동원하여 조각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높이 10∼15m까지 되는 형상에서부터 1∼2m정도의 소품이 늘어서고 2백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축제기간 중에는 가라오케대회·레이저광선쇼·패션쇼 등이 분위기를 돋운다.

<라면·맥주맛 일품>
삿포로 여행길에서는 꼭 먹어봐야 할 것도 여러 가지 있다.
첫째는 라면인데 삿포로 시내에만도 1천개가 넘는 라면집들이 있다니 삿포로 라면의 진면목을 알만하다. 한그릇에 6백∼9백엔 정도인데 양이 좀 많다.
한집에 10명쯤 들어가면 꽉 찰만한 라면집이 밤중에 보면 끝이 안보일만큼 옥수수 알갱이처럼 들어서 있는 밤풍경이 퍽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감자·게·연어요리 등이 홋카이도의 벌미로 소문나 있다.
관광객이 맛봐야 할 또 다른 것으로는 아이스크림과 맥주가 있다.
본래 유제품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우유에 여러 가지 과일을 가미한 아이스크림은 입맛을 상큼하게 해준다.
특정 음식점 선전 같지만 이제 관광코스처럼 돼버린 「삿포로 비어 가든」의 맛과 분위기도 꼭 체험해 볼만하다.
1인당 3천엔 정도의 금액으로 생맥주와 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본래는 맥주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했다고 하는데 옥외가든 말고도 실내에만 1천5백명 이상이 족히 들어갈만한 넓이다.
아무튼 화를 복으로 바꾸고, 평범한 것에 매력을 불어넣고, 무용지물을 가공하는 일본사람들의 재주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백 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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