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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연구의 대가 제인 구달 방한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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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9일 서울 힐튼호텔 기자회견장. 빨간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의 할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1960년부터 탄자니아의 곰비국립공원에서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제인 구달(69) 박사. 40여년 전 침팬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모습을 연상시키듯 걸음걸이는 조용하기만 하다.

이번 한국 방문은 96년에 이은 두번째. 한국과학문화재단과 한국영장류연구소 건립을 추진 중인 서울대 최재천(생명과학부) 교수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침팬지가 쓰는 언어인 '팬트후트'로 인사 하겠다"고 말문을 연 구달 박사는 손짓과 함께 "우-우-후~"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편집자]

-이번 방문 목적은.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환경의 중요성과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자연사랑 운동의 일환으로 전세계 83개국 6천여개의 그룹에서 '루츠 앤 슈츠(Roots & Shoots.뿌리와 새싹)' 운동을 벌이고 있다. 뿌리는 튼튼한 기초가 되고, 줄기의 새싹은 약하지만 벽도 뚫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환경.사회문제가 벽돌이라면 이를 없애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 어린이들에게 '너희들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고, 매일매일 뭔가를 실천할 수 있으며 지금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자연과 함께하는 진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작은 철창에 침팬지를 가둬놓고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난폭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설득으로 연구를 중단한 사례도 있다.자연과 동물은 우리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목적은 최재천 교수의 영장류연구소 추진을 돕기 위함이다(인터뷰에 배석하고 있던 최교수는 "96년 첫만남 때 구달 박사가 시설이 완공되면 침팬지를 전달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 어린이들에 지구 운명 달려

-침팬지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으로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의심받은 적은 없나.

"침팬지의 입장에 서더라도 충분히 과학적인 객관성을 취할 수 있고 올바른 질문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아픈 자식을 보살피는 어미 침팬지를 관찰하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기록에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냉정한 과학자가 아니라 먼저 제대로 된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침팬지에게 법적 권리를 주자는 주장도 있다.

"야생 침팬지는 연구 결과 5백~6백개의 수화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한국의 개고기 문화 등에 대한 토론이나 논의는 할 수 없다(구달 박사는 96년 방한 때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선 돼지고기를 즐긴다. 돼지도 개처럼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개를 먹는 것이 돼지를 먹는 것보다 나쁘다는 윤리적 근거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이건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잘 대해주고 자비롭게 죽이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었다). 어쨌든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이런 점에서 93년부터 영장류 프로젝트(GAP)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영장류의 법적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되는 '자유를 누릴 권리''고통받지 않을 권리' 등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가 얼마나 가치있는지 의문이 든다. 수많은 인간이 기본적인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법적권리보다 인간의 책임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장류의 생체 실험을 통해 과학은 많은 발전을 이뤘다.

"과학의 결과물이 다 옳은 데 쓰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고도로 발단한 두뇌로 각종 디지털 기계를 만들어 편의를 제공했지만 잔인한 대량 살상무기도 만들어냈다. 좋은 두뇌를 이용해 생체실험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조작식품(GMO)도 마찬가지다. GMO가 인간의 건강에 직접적 피해를 주었다고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크다. 농약으로 쓰인 맹독성 화학물인 DDT의 환경폐해를 알아내는데 30년이 걸리지 않았느냐. 그러나 현재 과학적인 실험에서 곤충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선 유전자가 조작된 식물의 꽃에 몰려든 벌들이 모두 죽었다. 동물복제 등 유전자를 변형한 동물의 건강에 문제가 많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음식을 진정 먹고 싶은지 묻고 싶다."

*** 환경을 죽이면 인간도 죽어

-경제발전과 환경보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15년 전 곰비 계곡을 지날 때 국립공원 이외에는 나무가 없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적정수준에 비해 많은 인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환경을 파괴하면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대만에서 조화를 이룬 좋은 예가 있다. 대만 정부는 남북을 잇는 철로 건설공사를 계획했는데 멸종위기에 도달한 '자카나(연각)'라는 새의 서식처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세계 각국의 환경운동가와 동물학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대만 정부는 서식처를 다른 곳에 새롭게 만들어줬고, 자카나는 멸종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이다."

구달 박사는 11일 오후 4시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침팬지와 나의 삶'이란 주제로 대중강연회와 사인회를 연다.

심재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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