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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들어간 비구니 도량 운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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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가을 스님은 다리가 아홉개 있어야 한다'(秋僧九足)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할 일이 많고, 바쁘다는 뜻이다. 지난 7일 오후 경북 청도군 운문사(雲門寺)의 풍경이 그랬다. 솔잎 향기가 코를 강하게 찌르는 사찰 초입부터 분주함이 느껴졌다. 겨울 김장에 쓰일 배추밭과 무밭이 사찰 정문에 해당하는 범종루(梵鐘褸) 앞에 넓게 펼쳐졌다.

경내에 들어서니 가지런히 정돈된 메주가 시선을 잡는다.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마주 보고 있는 2백평 규모의 만세루(萬歲褸) 한편에서 건조 중이다. 예비 스님(학승)들도 정신이 없다. 책상을 정리하고, 마당을 쓸고, 저녁 공양(식사)을 준비하고 등등. 법고(法鼓.큰북) 치는 법을 익히는 학승도 보인다. 8일 새로 시작되는 용상방(龍象榜.스님마다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방)도 짜고 있다. 마침 8일은 전국 선원(禪院)에서 2천여명의 스님이 동안거(겨울 석 달간 사찰 출입을 금하고 참선 수행에 정진)를 시작하는 날이다.

운문사에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講院)인 운문승가학원이 있다. 현재 2백70여명의 예비 승려가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정식 스님이 아니기에 동안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생활이 안거와 큰 차이가 없다. 동안거에 맞춰 용상방을 새로 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운문사는 올해 별도의 선원을 마련해 비구니의 동안거를 돕고 있다.

운문사의 가장 큰 특징은 공부와 노동(울력)의 병행이다. 사찰의 모든 것을 스님과 학승들이 알아서 해결 한다. 채소를 길러 식사 거리를 대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학승들이 직접 만들었다. 물론 청소는 기본이다. 10여년 전까진 쌀농사도 했으나, 지금은 이것만 소작을 주고 있다. 특히 학승들은 하루 두 시간씩의 울력을 해야 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한끼도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정신을 투철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운문승가학원장을 맡고 있는 명성(74) 스님은 "우리가 농사를 지으니까 농대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일이 너무 고되 학승들이 데모는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일과 공부는 절대 둘이 될 수 없으며 일상 자체가 수행이라는 게 운문사의 일관된 정신"이라고 말했다. 꽃 한송이 가꾸기, 마당 쓸기 자체가 해탈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운문사가 전통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전통 수행법을 강조하되 현대화한 교육에도 큰 비중을 둔다. 컴퓨터.꽃꽂이.피아노.요가.합창 등 다양한 강좌가 개설됐다. 외부 전문가 특강도 활발하다. 때문에 4년간의 교과과정은 여느 곳보다 엄격하나 입학 경쟁률은 가장 높아 매년 3대 1이 넘는다고 한다.

청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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