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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부활한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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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가장 혹독한 삶의 고통 속에서 눈부신 예술이 태어나곤 한다. 멕시코 출신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54)가 바로 그렇다. 영화 '프리다'는 그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화가로서의 예술적 성취를 논하기 이전에 프리다는 한줄로 요약하기 어려운 다양한 정체성의 소유자였다. 육체적으로는 여성이자 장애인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스탈린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트로츠키를 후원한 공산주의자였으며, 성적으로는 양성애 취향도 가졌다. 이런 삶을 두 시간 안팎으로 축약하려니 시나리오 작가 여러 명이 머리를 싸매야 했을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프리다가 겪은 고통의 근원 두 가지를 중심으로 '상처받은 여성'에 초점을 맞춰 줄거리를 펼쳐나간다. 10대 시절 우연한 교통사고는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소녀 프리다를 이후 평생에 걸쳐 수십 차례의 수술을 받고 많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처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스물 한 살 연상인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생활은 이보다 더한 고통을 준다. 프리다와 처음 만날 당시 이미 멕시코의 손꼽히는 화가였던 디에고는 모델과의 잠자리를 '악수 한 번'으로 치부하는 습성을 결혼 후에도 버리지 않는다.

프리다의 말마따나 "정치적 동지이자 동료 예술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는 했어도 '남편'인 적은 없는" 디에고는 이후 프리다와 절친한 여성과도 관계를 맺어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내 인생에 충돌사고는 두 차례였는데, 한번은 교통사고였고 다른 한번은 당신과의 만남"이라면서 "두번째가 훨씬 나빴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리다는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이 여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것과 달리 폭음에 의지할망정 이런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그림으로 토해낸다. 영화'프리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뭐니뭐니 해도 대담한 색감과 상상력이 가득한 프리다의 그림들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라이언 킹'을 만들었던 감독 줄리 테이무어는 유달리 자화상을 많이 그린 프리다의 작품 속 이미지를 영화에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녹여내는 방식을 선보인다.

절망적인 심경으로 거울을 앞에 두고 치렁한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대던 프리다의 모습은 어느새 '머리를 자른 자화상'속의 남자양복을 입은 인물이 되고, 상처 입은 내면을 스스로 위로하는 심경은 프리다가 그림'두 사람의 프리다'의 구도 속으로 걸어들어가 혈관에서 피가 흐르는 또 하나의 자아와 손을 붙잡는 식으로 묘사된다.

디에고가 미국 록펠러 가문의 주문으로 록펠러센터에 벽화를 그리는 대목은 영화'킹콩'을 패러디해 디에고가 고층빌딩을 기어오르는 애니메이션처럼 표현하는 듯 싶더니 결국 프리다의 작품인 '도로시 헤일의 자살'의 이미지를 빌려와 마무리한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미술사가 헤이든 헤레라가 1980년대 초부터 발표한 글들은 미국 사회, 특히 여성주의자들 사이에 프리다에 대한 관심이 불붙는 계기를 마련했다. 체구는 작아도 일자눈썹만큼이나 강렬한 열정으로 47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았던 프리다 역할은 마돈나와 제니퍼 로페즈도 탐을 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공동제작자의 역할까지 겸한 셀마 헤이엑에게 돌아갔다. 라틴 선율을 주조로 서정과 격정을 한 데 표현한 음악은 올 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8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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